김광우의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미술문화)에서  
 
고갱, 테이블 커버와 야채의 정물에서 세잔의 영향을 볼 수 있으며

 
1885년 고갱이 그린 <정물이 있는 실내>는 일반적이면서도 개인적인 상징적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 정물화는 고갱이 코펜하겐의 아파트를 세얻어 1884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 늦게까지 가족과 함께 지낸 곳에서 그린 것이다.
이 작품은 10년 넘도록 아마추어 화가로서 노력한 끝에 도달한 결정판이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정물을 그리면서 테이블 뒤로 방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묘사했다.
테이블 커버와 야채의 정물에서 세잔의 영향을 볼 수 있으며 벽지의 경우 그가 소장하던 세잔의 정물화에서의 벽지를 그대로 사용했음을 본다.

이 정물화에서 특기할 점은 고갱은 정물을 그리면서 배경에 인물을 그림으로써 정물화와 인물화의 구분을 없애고 두 장르를 혼용한 것이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점은 공간에 대한 배분으로 창문 옆에서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침대가 유난히 높고 카드놀이를 하는 테이블은 침대보다 낮으며 다섯 사람이 보이는데 그들의 관계를 알 수 없다.
테이블에는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사용하는 붉은색 나무로 제작된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컵 탱가드tankard가 방쪽을 향한 열린 문을 앞으로 하고 위치되어 있는데 컵 너머로 열린 방안의 모습을 화가가 보고 그린 것인지 아니면 테이블 뒤 벽에 부착된 거울에 반대편의 방안 장면이 비쳐진 것인지 알 수 없다.

고갱은 천을 배경으로 나무로 제작된 탱카드와 물주전자만을 사용해 1880년에 정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반 고흐가 1885년에 그린 <펼친 성경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Open Bible>과 같은 해 고갱이 그린 <정물이 있는 실내>를 비교하면 두 사람의 미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두 사람의 회화적 경향은 이후 그들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두 정물화 모두 전통을 무시한 창작이었으며 상징주의 요소가 강렬하게 나타난 것들이고 자신들의 미적 정체성을 발휘한 작품들이다.

반 고흐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4년 동안 스스로 노력한 끝에 에밀 졸라의 소설과 성경책 그리고 촛대를 사용해 정물화를 그렸다.
특히 색채에 대한 그의 관심과 노력이 이 정물화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 작품에서 그가 사변적으로 구성했음을 알 수 있는데 졸라의 소설은 낡고 덮인 채로, 그러나 성경책은 펼친 페이지로 모노크롬으로 그리면서 조명 효과에 의한 밝은색을 사용한 점과 두 권의 책에 대한 묘사 등에서 그의 의도를 읽어낼 수 있다.
펼쳐진 성경은 구약의 이사야서 35장으로 '종의 노래 Servant Songs'로 기독교인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장이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고난받는 종의 모습은 훗날 그리스도의 전형이 되었다.
성경 앞 낡은 소설은 졸라가 1884년에 쓴 <삶의 기쁨 La Joie de vivre>이다.
커다란 성경책은 권위를 나타내는 데 비해 작은 소설은 그렇지 못하지만 빛을 받아 밝게 빛난다.
이 작품에서 성경은 한 달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반 고흐의 아버지를 상징한다.
반 고흐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목사가 되려고 했지만 신학교에 입학할 만한 실력이 되지 못해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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