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틴은 자신의 헬멧과 군기에 십자가를 장식했다
 

초기 기됵교 운동은 탄압으로 인해 지하운동으로 서서히 그러나 결집력을 지니고 퍼져나갔다.
예수 타계 이후 약 300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부자 크리스천의 집에서 간소한 방법으로 예배를 드렸다.
기독교는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에게 전도되었는데 당시 그리스어는 국제적 통용어와도 같았다.
기독교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주로 성행했으며 그후 이탈리아인에게도 알려졌다.

미술과 관련해서 기됵교를 언급하려는데
기독교 미술이 시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콘스탄틴 대제Constantine the Great(306-337 재위)가 313년 '밀라노 칙령the Edict of Milan'을 통해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선포한 이후부터였다.
당시 크리스천의 수가 로마 인구의 20% 미만에 불과했지만 크리스천의 결집력은 매우 강했으므로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세력이 되었고 따라서 콘스탄틴 대제는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를 통일하기 위해서 국민의 단합이 필요했고 국민의 단합을 위해서라면 어떤 종교라도 국교로 인정해야 할 판이었다.
어머니와 누이가 크리스천이었으므로 그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는 데 두 여인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교회사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가이샤라Caesarea의 주교 유세비우스Eusebius는 콘스탄틴이 말년에 자기에게 한 말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전했다.

콘스탄틴이 로마의 티베르 강Tiber River 너머 밀비안 다리Milvian Bridge에서 막센티우스Maxentius와 격전을 벌이기 전날 밤 하늘에 십자가가 보였는데 십자가에는 "이 부호를 갖고 정복하라 In this sugn, conquer"고 적혀 있었다.
다음 날 밤 콘스탄틴의 꿈에 그리스도가 그 부호와 함께 나타났는데 부호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X자 위에 P자를 올려놓은 십자가로서 그리스어로 그리스도Christos의 첫 두 글자 chi(X)와 rho(P)를 따서 만든 것이다.
이것을 크리스몬Chrismin 혹은 크리스토그램Christogram이라고도 한다.
콘스탄틴은 자신의 헬멧과 군기에 십자가를 장식했다.

전투에서 승리한 콘스탄틴은 로마제국의 황제로 군림할 수 있게 되었고 이때부터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듬해 그와 동료 황제 리시니우스Licinius는 '밀라노 칙령'을 통해 로마제국 내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다.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국교the official state religion로 선포한 적은 없다.
하지만 그의 후원 하에 기독교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콘스탄틴은 동방과 서방의 교회가 교리의 문제로 분열을 일으키자 주교들의 종교회를 통해 통일된 교리를 만들어 분열을 막는 등 기독교 발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스스로 국가와 교회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했는데 고대 이집트와 근동의 국가에서는 왕이 종교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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