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생명의 춤> 
 

'생의 프리즈'의 주제를 가장 집약적이고 종합적으로 나타낸 것이 1899-1900년에 그린 <생명의 춤 the Dance of Life>이다.
이 그림에는 뭉크의 인생관이 응축되어 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나의 첫 사랑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에 관한 기억을 그린 것이다.
곱슬한 금발의 미소짓는 여인을 다음에 그렸는데 누구라기보다 만개한 꽃과 같은 사랑을 나타낸 것이다.
맞은편 검정색 의상을 한 여인은 춤추는 한쌍을 고통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춤을 출 때 내가 소외된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녀도 소외되었다."

이 그림은 뭉크가 즐겨 찾는 아스가드스트란트 나무 아래 풀밭에서 유쾌한 춤을 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오늘날에도 여름 밤이면 아스가드스트란트 나무 아래서 사람들이 춤을 춘다.
그러나 그는 나무 아래가 아닌 기분 나쁜 음산한 곳에서 춤추는 것으로 변형시켰다.
오른쪽에 흰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과 춤추는 남자는 흥에 겨운 모습이다.
<달빛>(1895)에서 묘사한 기다란 유리관과 같은 달을 배경에 삽입하여 달빛 아래 사람들이 춤을 추도록 구성했다.

<생명의 춤>에서의 세 여인은 중앙의 뭉크와 관련이 있다.
그의 사랑놀이, 경험, 환멸이 상징적으로 세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여자의 세 시기>와 상통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남자의 등에 팔을 감은 여인의 붉은색 드레스가 남자의 검정색 의상과 더불어 강렬한 색상의 느낌을 주고,
흰색 드레스의 여인은 인생의 가능성과 기대를 상징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얼어붙은 듯 서 있는 검정색 드레스의 여인은 과거 혹은 잃어버린 세계를 피안에 서서 돌아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뭉크의 여성관을 알게 해주는 수수께끼 같은 세 여인을 본다.
왼쪽 정숙한 옷차림을 한 금발의 처녀는 순결과 순수함의 표상이다.
오른쪽의 검정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체념의 운명 속에 갇혀 있는 어머니의 표상이자 고통받고 침묵하는 하녀의 모습이다.
부동의 자세를 취한 두 여인의 가운데서 선정적인 댄스로 남자를 이끄는 붉은 머리의 여인은 흡혈귀 같은 여인의 상징으로 치명적인 유혹과 상대를 집어삼키는 관능성을 지니고 있다.
뒤에는 남녀 몇 쌍이 즐거운 기색도 없이 달빛 아래서 춤을 추고 있다.

이 그림을 포함한 일련의 '생의 프리즈' 작품을 본 평론가 칼 셰프라는 뭉크에게서 "광기에 이끌려 세상의 지옥을 방황하는 숙명"을 보았다면서 그의 그림이 "표현주의 회화를 예고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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