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추상일세
김광우의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미술문화) 중에서
목적없이 바라본 대상
마네와 모네를 선두자들로 삼고 일련의 화가들이 추구한 소위 말하는 인상주의는 카메라의 위협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한 첫 사례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인상주의는 사실주의에서 벗어난 회화방법이 못되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이 대상에 닿아 굴절하고 흩어지는 순간적인 색채의 변화에 집착했는데 이는 훗날 발명될 좀더 개량된 카메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었다.
가령 풍경화를 찍을 때 카메라의 조리개는 최대한으로 열어놓고 상응하는 타임스피드는 높인 후 초점을 일부러 맞추지 않는다면 모네와 그의 친구들이 그린 풍경화들과 유사하게 나타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당시의 카메라보다 한 발 앞선 과학적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것이다.
모더니티의 의미를 사실주의와의 단절에서 찾는다면 인상주의는 사실주의와 단절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 탐색에 빠지고 말았다.
폴 고갱은 인상주의 화가들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든 걸 접어두고 색채에만 몰입한다.
그들은 장식적 효과를 노림에도 불구하고 자유롭지 못하며 실재에 접근해야 한다는 속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상징적 허구의 풍경이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상만을 바라볼 뿐이다.
그들이 본 건 조화롭지만 거기에는 목적이 없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건립한 건물에 탄탄한 토대가 없는 까닭은 감각의 매개를 색채로만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탐구의 주안점을 눈에다 놓을 뿐 신비로운 사고에는 두지 않는다.
자연히 과학적 탐색에 빠지고마는 것이다. 물리학과 형이상학은 별개이다.
…
그들은 최초의 성공에 눈이 멀어 이를 전부라고 여긴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내일의 관료이다.
어제의 관료보다 더욱 더 살벌한…"
예술이란 추상일세
모더니티의 의미를 사실주의와의 단절에서 찾는다면 예술가들이 예술을 추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당시만 해도 인상주의는 모든 화가들에게 적용된 말이었고 따로 구별되는 말이 없었다.
고갱이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스로를 인상주의 화가라고 칭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는데
고갱을 오늘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런 의미의 인상주의 화가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후기인상주의로 분류되는 고갱과 반 고흐야말로 예술을 추상으로 인식한 선구자들이었다.
따라서
두 사람을 최초의 모던 아티스트들로 칭송해야 마땅하다.
반 고흐의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은 누가 봐도 사실주의 그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묘사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은 우리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밤하늘이 아니라 대기의 강력한 기운을 반 고흐와도 같은 방법으로 상상할 때만 마음 속에 그려볼 수 있는 하늘인 것이다.
추상의 의지로 과장되고 함축된 밤하늘인 것이다.
더욱이
프랑스의 풍경을 그리면서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북유럽의 뾰족한 탑이 있는 교회가 삽입된 것은 반 고흐가 바라본 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 그린 풍경을 표현한 것임을 말해준다.
예술이 추상임을 고갱은 1888년 8월 14일 친구 슈페네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강조했다.
"자네에게 한 가지 충고한다면 자연을 가까이서 바라보지 말라는 걸세.
그보다는 차라리 어떤 걸 창조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예술이란 추상일세.
자연 앞에서 꿈꾸며 추상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지.
그것만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며 조물주인 신이 이루어낸 창조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일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