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를 끊는 것이 해탈moksha이다
윤회를 끊는 것이 해탈moksha이다.
해탈은 아트만이 윤회의 악순환 상태에서 풀려나는 것을 의미했는데
중국사람들이 해탈로 번역했다.
인도사람들은 아트만이 스스로 브라만임을 자각할 때 윤회의 고리를 끊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다.
지바트마 자아를 버리고 파라마트마 자아를 자각하는 것인데
순수한 의식에서 이미지를 버리고 본질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만두꺄 우파니샤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순수하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상태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본래부터 해탈의 상태에 있었던 것이니라."
해탈의 경지를 <만두꺄 우파니샤드>는
"모든 소망을 성취한 사람. 그가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하고 기술했으며,
<찬도갸 우파니샤드>는 "아트만을 깨달은 사람은 죽음과 슬픔을 보지 않느니라"고 주장한다.
<까타 우파니샤드>는 해탈을 불멸의 상태에서 아트만이 브라만임을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그대 심장 속에 잠복해 있는 모든 욕망의 매듭이 풀릴 때 순간적인 지각은 불멸이 되느니라.
그대는 이때 브라만임을 깨닫게 되느니라."
해탈한 자를 현자로 부르면서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옛날의 현자들은 자손의 번식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들은 자손과 부귀영화를 미련없이 버리고 묵묵히 고행의 길을 걸어 갔느니라.
왜냐하면
자손에 대한 욕망은 결국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인 줄 알기 때문이니라.
이 둘은 겉보기에 다른 것인양 보이지만
결국 동일한 욕망의 두 가지 표현 양식에 지나지 않느니라."
해탈은 아트만과 브라만이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이제 아트만의 호흡은 어디로도 가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아트만은 지금 여기서 브라만 자체가 되어 브라만과 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니라."
"동쪽은 동쪽의 호흡으로 가득차 있으며,
서쪽은 서쪽의 호흡으로 가득차 있고,
남쪽은 남쪽의 호흡으로 가득차 있으며,
북쪽은 북쪽의 호흡으로 가득차 있고,
아래쪽은 아래쪽의 호흡으로 가득차 있으며,
위쪽은 위쪽의 호흡으로 가득차 있느니라.
온누리가 호흡으로 가득차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