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브리치는 예술가의 사고나 개념을 지식의 성장으로 보고
 

미술품은 자연을 모델로 할 필요도 없고 자연인 것처럼 보여질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 데서
미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 하게 되었다.
이런 주장은 엄청난 것이어서 미술사의 한 장을 닫고 미술사의 새 장을 여는 것이며 달리 말하면 패러다임이 붕괴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절실히 요구하는 것이다.
자연인 것처럼 보이지 않아도 미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이천수백 년 동안 유효했던 패러다임이 이제 그 기능에 한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요구는 과거의 패러다임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자연히 발생되는 것이다.

뒤샹의 레디 메이드와 팝아트 아티스트들의 대중적 평범한 재료와 이미지의 변용은 미술품이 자연을 좇아 만들어지는 인공물이라는 정의를 정면으로 부정했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은 미술품으로 인정받으려면 필요 충분 조건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필요 충분 조건이란 미학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곰브리치의 경우를 예로 들면 만들기와 조화시키기로서
실재에 대한 예술가의 사고나 개념이 만들기를 우선으로 그 다음 조화를 얼마나 꾀하느냐 하는 데 따라서 미적 순위를 매기는 것을 말한다.
곰브리치는 예술가의 사고나 개념을 지식의 성장으로 보고 여기에 미술사의 의의를 둔다.
곰브리치의 미적 판단에 따르면 뒤샹의 행위는 뻔뻔스러운 행위로서 만들기와 조화시키기의 범주 밖의 유치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모더니즘 이론을 정립한 미국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에게도 뒤샹의 행위는 자신의 순수미술 이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는 미술품을 예술가의 미적 감각을 뽐내는 인공물로 보았다.
그 역시 뒤샹과 팝아트를 무시했다. 팝아트에 대한 다음과 같은 그린버그의 말은 곰브리치가 했을 법한 말로도 들린다.
“팝아트는 취향의 역사에서 새로운 에피소드에는 해당되더라도 동시대 미술의 진화에서 볼 때는 정녕 새로운 에피소드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린버그는 팝아트를 옵아트와 미니멀리즘과 함께 진기한 미술의 범주로 격하시켰다.
그가 말한 진기하다는 말은 상점에서 매매되는 신제품들의 유행에 쳐진 것으로 단순히 진기함을 뜻한다.
곰브리치와 그린버그 모두 미술품은 미술품을 제작하려는 고상한 의도로 제작된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으므로
두 사람에게 상업미술로부터 이미지와 재료를 끌어오는 팝아트란 곰브리치가 말한 대로 “단순히 어떤 취향이나 유행의 표본으로서만 흥미가 있는 작품”만을 산출하는 예술에 지나지 않아
미술의 역사적 진화의 의미에서 볼 때 전혀 새로운 것이 못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거스리는 퇴행하는 운동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린버그는 1992년 여름 역사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미술이 “매우 천천히 진행되었다”면서
지난 30년 동안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았다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팝아트와 옵아트 그리고 미니멀리즘을 미술사에서 퇴행한 통탄할 만한 미술로 간주했다.
그린버그에게 미래에 대한 전망을 묻자 그는 “데카당스!”라고 대답하며 서양미술이 매우 절망적임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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