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폴록에게는 지성이 없었다 
 
김광우의 <폴록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암컷이리 She-Wolf>는 폴록의 대표작들 중 하나로 그가 1943년에 그린 것으로 그해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이 그녀의 화랑 금세기의 예술Art of This Century에서 열어준 개인전에 출품하기 위해 그린 것들 중 한 점이다.
1930년 18살의 나이로 뉴욕에 온 지 13년만에 자신에게 주어진 첫 행운의 개인전을 위해 신명이 나서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의 크기가 가로 세로 170cm 106cm인 것만 봐도 대작을 그리겠다는 야심에 차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암컷이리는 로마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동물로 로마를 건국한 쌍둥이에게 젖을 먹여 키운 로마인들에게는 고귀한 동물이다.
하지만 이런 건국에 관한 에피소드를 염두에 두고 폴록이 그린 것은 아니었다.
두 동물이 등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그림에서 왼쪽 동물은 황소로서 피카소의 <궤르니카 Guernica>에 나오는 황소를 연상하게 한다.
폴록은 <궤르니카>를 뉴욕 화랑에서 보고 코가 아주 납작해진 적이 있었다. 피카소의 이 작품은 폴록뿐 아니라 뉴욕의 많은 젊은 화가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폴락 Pollock>이란 제목의 영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상영되었다가 사라졌는데 폴록이라고 하지 않고 폴락이라고 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폴락은 Pollack으로 이런 이름이 따로 있다.
여하튼 이 영화는 폴록의 일대기를 다룬 것으로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인데 경제적으로 실패한 데 대해 유감이다.
광고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면 폴록이 술에 취해 형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다 쓰러진 채 “피카소가 다 해 먹었다”고 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피카소에 의해 회화는 죽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실제로 많은 화가들이 딴 직업으로 전업하거나 조각으로 장르를 바꾸는 등 피카소의 위협은 대단했다.
<궤르니카>에서 본 황소의 이미지가 폴록의 잠재의식에 남아 있다가 <암컷이리>에서 뛰쳐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오른쪽 동물은 전혀 다른 류의 소로 미국의 5센트 코인에 새겨져 있는 들소처럼 보인다.
두 동물은 두툼한 붉은 화살로 황소의 심장으로부터 들소의 머리까지 수평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런 화실은 인디언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폴록이 한때 인디언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러니까 <암컷이리>는 피카소의 황소와 미국 들소의 만남이었고 두 놈이 인디언의 화살에 맞아 폴록의 전리품이 된 셈이다.

페기는 이 그림의 가격을 650달러로 매겼는데 모마가 50달러를 깍아 600달러에 구입했다.
<암컷이리>는 미술관이 구입한 폴록의 첫 작품이 되었다.

그해 폴록은 <파시패 Pasiphae>도 그렸는데 파시패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노스Minos의 아내이며 또한 흰 황소와 섹스해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미노타우르Minotaur를 낳은 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러나 폴록은 파시패를 그리려는 의도도 그린 것은 아니었다.
평론가 스위니가 폴록의 작업실에서 그 그림을 보자마자 파시패라고 제목을 붙여야 한다고 우겼기 때문에 <파시패>가 된 것이다.

폴록의 많은 그림은 제목을 염두에 두고 사변적으로 그려진 것들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그린 후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정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의 작품을 감상할 때 제목에 구애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제목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감상해도 된다.
폴록의 그림은 한 마디로 잠재의식의 현상으로 그가 아주 솔직하게 강박관념처럼 따라다니는 이미지들을 표현했으므로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창작 과정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알 수 있다.

우리도 융의 제자 헨더슨과 같은 입장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작품이 지닌 장점이기도 하다.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관람자를 속이며 기만하는가!

숨김없이 드러낸 폴록의 잠재의식에서 우리는 고대 원시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인간 본능의 일면을 보고 공감하게 된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기교를 발견하게 된다

폴록에게는 지성이 없었다.
신비주의를 탐닉했고 알코올 중독과 정신분열로 의식과 무의식의 뚜렷한 경계가 없는 혼돈 속에서 생활했다.
그가 생각한 것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 다혈질인 그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논리적을 말을 할 수 없었는데 사고가 전혀 논리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폴록이 유명해지자 많은 사람이 그를 인터뷔했고 윌리엄 롸잇William Wright도 그를 인터뷔했는데 다음의 대화를 통해 폴록의 미적 관심을 알아보자.

WW: 모던아트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JP: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목적들에 대한 표현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WW: 과거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표현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JP: 그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날의화가들이 자신들 밖에서 주제를 발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 모던 아티스트들은 다양한 데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지만 그들은 자신들 안에서 작업합니다. 새로운 요구는 새로운 기교를 필요로 합니다. 각 시대는 그 시대의 기교를 발견하게 됩니다.

WW: 예술가는 무의식으로부터 그림을 그리고 캔버스는 예술가가 바라보는 무의식처럼 나타나야 한다는 게 사실입니까?

JP: 내가 사용하는 대부분 물감은 유액으로 묽은 물감입니다. 붓보다는 붓의 윗부분인 막대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붓은 캔버스에 닿지 않고 그 위에 있게 됩니다.

WW: 캔버스에 붓으로 칠하지 않고 막대기로 물감을 떨어뜨리는 방법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 말할 수 있겠습니까?

JP: 음, 그렇게 하는 게 좀더 자유로우며 캔버스 주위로 움직이는 데 더 편합니다.

WW: 음, 막대기는 붓보다 조절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내 말은 물감을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많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붓을 사용하게 되면 칠하고자 하는 바로 그곳에 물감을 바를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색을 칠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JP: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경험에 의할 것 같으면 ...
막대기에서 떨어지는 물감의 양을 조절하게 됩니다. 난 우연한 현상을 사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연의 현상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WW: 프로이트는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JP: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WW: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를 사전에 갖고 작업하십니까?

JP: 일반적인 관념과 결과를 미리 생각하고 그리지만 드로잉을 하고 작업하지는 않고 캔버스에 직접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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