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우의 <뒤샹과 친구들>(미술문화) 중에서  
 
뉴욕의 가능성

뒤샹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한 것은 1915년 6월 15일이었다.
아모리 쇼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 가운데 특히 <계단을 내려가는 누드>는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므로 뉴욕에 도착하면서부터 뒤샹은 진보주의 예술가들의 아트 서클에 영예로운 선두자로 영입되었다.
그가 뉴욕에 도착하고 두 달 후 가진 인터뷔에서 “미국이 미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겠습니까?”란 질문을 받았는데
그의 대답에서 뉴욕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고층 건물들을 보십시오! 이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들을 유럽이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뉴욕 자체가 하나의 미술품이며 완전한 미술품입니다.
오래된 건물들과 추억의 유품들을 부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게 부각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과거를 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 시대에 우리들의 삶을 반드시 살아가야 합니다.

뉴욕이 미술의 중심지가 될 소지가 다분히 있음을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파리와 유럽에서는 어느 시대에서라도 젊은이들은 늘 자신들을 어떤 위대한 사람들의 손자들쯤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프랑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빅토르 위고의 손자들이라 생각하고,
영국 젊은이들은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손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회의 조직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며,
그들이 자신들의 창의력을 산출하려고 하더라도 파괴할 수 없는 전통주의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점이 미국에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세익스피어 따위에 관심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에게는 그의 손자라는 느낌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진전시키기에 여기보다 더 훌륭한 곳은 없습니다.

뉴욕은 가능성 있는 도시였고 뒤샹의 영향으로 좀더 일찍 예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