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서 

액션 페인팅

액션 페인팅은 추상표현주의의 또 다른 명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추상표현주의 혹은 액션 페인팅은 대전 후 뉴욕에서 발흥된 무브먼트로 미국인이 처음 자신들의 미술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을 갖게 해준 자랑할 만한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대표적 예술가가 바로 잭슨 폴록Jackson Pollok이다.
그가 1956년 음주운전으로 세상을 떠나자 추상표현주의 혹은 액션 페인팅이 막이 내린 것만 봐도 뉴욕 미술계에서의 그의 위상이 독보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추상표현주의란 말은 1919년 베를린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후 십 년이 지나고 뉴욕 모마의 초대 관장 알프레드 바 주니어Alfred Barr Jr.가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의 초기 추상을 가리켜서 추상표현주의 작품이라고 말한 후 추상표현주의란 말이 널리 알려졌다.
이 말이 1945년 뉴욕 일부 예술가들에게 적용되었다. 평론가 로버트 코트스Robert Coates가 잡지 <뉴요커 New Yorker>에서 당시 미국 회화를 추상표현주의란 말로 묘사했으며 십 년 후 평론가들 사이에서 이 말은 널리 통용되었다.

미국은 나라라기보다는 대륙과도 같아서 미술계가 한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없었고 크게 나눠서 동부와 서부 그리고 중부에서 각각 화단이 형성되었는데 서부에서는 샌프란시스코를, 중부에서는 시카로를, 동부에서는 뉴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세 도시들 중 뉴욕이 가장 활성화된 도시였으며, 유럽의 모더니즘도 먼저 착륙한 곳도 이곳이었고, 유럽 대가들의 작품을 화랑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곳도 바로 뉴욕이었다.
뉴욕의 젊은 화가들은 전쟁을 피해 뉴욕으로 피신한 유럽 대가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좋은 환경에서 추상과 표현의 원리를 배울 수 있었는데
특히 독일 화가 한스 호프만의 미술학교는 뉴욕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폴록과 그의 아내가 호프만에게서 수학했고 한때 화가를 꿈꾼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도 호프만의 강의를 듣는 등 많은 화가들이 그로부터 수학했으며 그를 중심으로 모였다.
당시 추상과 표현을 추구한 예술가들을 통칭해서 뉴욕 스쿨New York School이라 했는데
한 세대를 10년으로 계산한다면 1945-56년에 속하는 추상표현주의 예술가들은 뉴욕 스쿨 1세이고,
60년대 성행한 팝아트 예술가들은 뉴욕 스쿨 2세에 해당하며,
70년대의 미니멀리즘과 개념주의 예술가들은 뉴욕 스쿨 3세에 해당한다.
3세들 가운데 한 사람 리처드 세라가 현재 육십대 중반이니까 3세도 거의 끝무렵이다.

추상표현주의는 유럽과 멕시코 회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개성이 강렬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발흥된 운동으로 이해해야 한다.
자생적이라고 한 것은 유럽과 멕시코 예술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미국인의 독특한 기질이 뚜렷하게 베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카우보이란 말은 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기질로 거칠고·모험적이며·당돌하고·자신만만함을 가리키는데
이런 기질 모두 추상표현주의 작품들에서 발견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액션페인팅을 카우보이 회화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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