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추럴 추상에는 특정한 양식이 있을 수 없었다 

2차 세계대전 중 그리고 이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무브먼트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났는데
알베르토 자코메티·장 뒤비페 그리고 북유럽의 코브라CoBrA 예술가들의 구상이 그 하나이며,
또 하나는 비구상으로 제스추럴 추상gestural abstraction이었다.
구상과 비구상의 차이를 말하라면 구상은 눈으로 본 대상의 형태를 의도적으로 과장하거나 왜곡시키더라도 최소한 어느 정도는 남겨서 관람자로 하여금 무엇을 과장하고 왜곡시켰는지 알게 하는 방법이고
이와 달리 비구상은 대상의 형태를 완전히 말소하는 가운데 또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내면의 느낌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스추럴 Gestural’이란 말은 몸짓이란 뜻으로 의사표시로서의 행위를 말하기 때문에 ‘제스추럴 추상’을 ‘추상표현주의’란 말로 바꾸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앞장에서 언급한 모더니티의 특징이랄 수 있는 추상과 표현을 한꺼번에 나타내는 미적 기류가 대전 후 미국에서 그리고 유럽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제스추럴 추상에는 특정한 양식이 있을 수 없었는데
추상과 표현은 양식화될 수 있는 성격들이 아니라 경향이나 운동으로밖에는 표출되어지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이 모던 철학의 통로를 개설했다면 회화에서의 “나는 그린다. 고로 존재한다”는 식의 추상과 표현이 포스트모던의 통로를 개설했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포스트모던’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모던 이후’라는 말이 적당할 것이다.
보통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를 모던 이후라고 하는데
제스추럴 추상이 모던의 막을 내리고 모던 이후의 시대를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스추럴 추상은 창작의 동기를 외부세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내면의 갖가지 요소들에서도 가지고 왔으므로 창작에 있어서 매우 자유로웠다.
제스추럴 추상은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는 추상 타쉬즘tachism, 서정적 추상lyrical abstraction, 앵포르멜informel 등으로 나타났는데
평론가들이 분류한 것들로 한 마디로 추상과 표현의 비구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의 공통점은 예술가들의 느낌·생각·매체·작업과정이 개성적이며 능동적으로 나타난 데 있다.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을 보고 겪은 예술가들은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거나 비인간적으로 치닫는 데 환멸을 느꼈으며 자연히 외부 세계와 단절하고 내면 세계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자신들의 개성을 찾아 드러내는 데서 자신들의 실존을 인정받기 원했다.
개성을 능동적으로 표현하는 데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는 건 물론 개인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새로운 휴매니즘의 바람을 일으키고자 했다.
세상을 불합리하다고 본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관점을 많은 지성인들이 받아들였으며,
지성적 예술가들은 불확실한 세계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그리고 진실하고 감정적인 방법으로 확실한 것들을 규정하기 위해서 낭만적인 방법으로 탐색전을 벌이게 되었다.
이는 불가지한 세계에 대한 일종의 모험이었으며, 발견이었고,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제스추럴 추상은 모호한 세계에 대한 탐험이었으므로 자연히 개인적인 혹은 개성적인 스타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불완전함의 미학을 제스추어를 통해 관람자와 컴뮤니케잇하는 것이었다.
예술가와 관람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감이 작품의 완전도를 이루는 데 필요 충분 요인이 되었다.
예술가의 작품을 하나의 미술품으로 규정하는 데 있어 관람자가 한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에서 보면 관람자도 간접적으로 창작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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