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력의 최상 상태인 순수한 의식 상태는
산스크리트어 아트만Atman은 호흡이란 뜻으로 독일어 아트멘Atmen과 같은 어원이다.
아트만은 나중에 복합적인 뜻을 지닌 말이 되었는데 자아, 혼, 의식, 그리고 자각력awareness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니르구나 브라만은 창조의지인 마야를 통해서 분화력으로 수많은 혼들로 나타났으며 아트만은 각각의 혼을 말한다.
이는 무에서 유가 생성된 것과 같은 이치인데 만물이 브라만의 분화인 아트만이 된 것이다.
브라만은 마야를 통제하며 아트만은 마야에 의해 통제받는다.
바다가 수많은 물방울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수많은 아트만들의 합이 브라만인 것이다.
아트만과 브라만의 관계는 따라서 많은 것many과 하나one의 관계이고, 유something와 무nothing의 관계이며, 천성과 인성의 관계이다.
<만두꺄 우파니샤드 Mandukya Upanishad>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브라만이며 아트만이 곧 브라만이니라."
마야에 의해 통제받는 아트만은 선과 악, 고통과 즐거움, 인과법칙 등 상대적인 것들 속에서 생사윤회samsara에 있게 된다.
하지만 인성은 천성으에서 왔기 때문에 속성에 있어서는 아트만은 브라만과 동일한 것이다.
<찬도갸 우파니샤드 Chandogya Upanishad>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아트만은 바로 심장 속에 있는 나 자신이니 이는 쌀알보다 작고,
보리알보다 작으며,
겨자씨보다 작고,
좁쌀보다 더 작으니라.
그렇지만 아트만은 동시에 세상보다 더 크고, 허공보다 더 크며,
여타의 모든 세상보다 더 크나니 아트만은 심장 속에 있는 바로 나 자신이니라."
<우파니샤드>에는 아트만을 가리켜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브라만 자체"라고도 적혀 있으며,
"아트만은 모든 것이며 만물이 아트만 속에 포함된다"고 한다.
혼이란 몸과 마음 그 이상을 의미하는데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 Brihadarayaka Upanishad>는 아트만이 혼임을 기술하고 있다.
"아트만은 마음 속에 머물고 있으나 마음과는 상이므로 마음은 아트만을 모르는 것이니라.
아트만은 몸과 마음이니라.
아트만은 마음 속에서 마음을 통제하느니라.
아트만은 그대 속에 있는 자아이며, 내적 통제자이고, 불멸의 존재인 브라만이니라."
인도사람들은 아트만에게 네 가지의 자각력이 있다고 믿었는데 잠이 깬 상태, 꿈꾸는 상태, 깊은 잠의 상태, 순수한 의식 상태이다.
잠이 깬 상태란 우리의 일반적 감각세계에서의 자각을 말하는데 감각기관으로 사물을 지각하는 것을 일컫는다.
꿈꾸는 상태는 잠이 깬 상태에서 얻어진 기억들을 근거로 개인적인 이미지들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꿈꾸는 상태에는 마차도 없고, 마차를 끌고 갈 말도 없으며, 길 또한 없나니라.
허나 그dreamer 자신이 마차를 만들고 길을 만드느니라.
거기에는 환희도 기쁨도 쾌락도 없느니라.
하지만 그 자신이 환희와 기쁨과 쾌락을 만드느니라.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꿈의 대상물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니라."
깊은 잠의 상태는 진정한 자아의 모습이 나타난 상태로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깊은 잠 속에서 본성과 결합된 아트만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느니라.
그의 모든 바라는 바가 성취되었으므로 바라는 모든 것이 그 자신이 되었느니라.
아트만은 모든 욕망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슬픔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났으므로 아트만은 진정한 모습이 되었느니라.
깊은 잠의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느니라.
허나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생각을 계속하게 되느니라.
왜냐하면 생각하는 자는 불멸적인 존재인 까닭이니라.
깊은 잠의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물처럼 투명해지니라.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것이 하나가 되느니라.
이는 브라만-아트만의 세계이니라.
이는 최고의 성취이며 축복이고 가장 높은 세계라 말할 수 있느니라.
축복의 극히 작은 일부분으로 모든 중생은 살아가고 있느니라."
자각력의 최상 상태인 순수한 의식 상태는 브라만과 아트만의 구별이 무너진 상태를 말하는데 <만두꺄 우파니샤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잠이 깬 상태와 꿈꾸는 상태는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차원이니라.
그리고 깊은 잠의 상태는 본질에 대한 인식력이 결여된 무의식의 차원이니라.
하지만 세 가지 차원이 부서지게 되면 순수한 의식의 상태가 드러나느니라."
순수한 의식 상태에서의 자아는 초월적인 파라마트마paramatma 아트만으로서 정신세계에 몰입한 자아를 의미하는데
육체적인 지바트마Jivatma 아트만에 상반되는 개념이다.
잠이 깬 상태, 꿈꾸는 상태, 깊이 잠든 상태에서의 자아는 지바트마 아트만을 말하고 자각력의 마지막 단계인 순수한 의식의 상태에서의 자아는 파라마트 아트만인 영적인 자아를 의미한다.
<까타 우파니샤드 Katha Upanishad>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여기 심장의 공간 속에 지바트마 아트만과 파라마트마 아트만이라는 두 개의 자아가 살고 있느니라.
지바트마 아트만은 희비애락의 파도를 타고 있지만 파라마트마 아트만은 지바트마 아트만을 저만치서 지켜보고 있느니라.
지바트마 아트만은 어둠 속에서 고뇌하고 있지만 파라마트마 아트만은 빛 속에서 조용히 지바트마 아트만을 지켜보고 있느니라.
그래서 깨달은 이들은 이 둘을 빛과 그림자로 설명하고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