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존재한다
철학에서는 인간을 이성적 동물로 규정하고,
사회학에서는 사회적 동물로 규정하지만,
인류학에서는 환경의 동물로 규정한다.
환경이 인간의 모습과 행위 그리고 운명을 만들기 때문이다.
백인, 흑인, 황색인의 피부는 해가 만든 것이다.
추운 지방 사람들이 키가 큰 것도, 더운 지방 사람들이 키가 작은 것도 춥고 더운 환경의 탓이다.
외형적 운명은 태양과의 거리 때문이다.
한 인간의 생애를 영화필름처럼 나고 죽을 때까지를 한 번에 들여다본다면 운명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각 인간의 삶이 환경에 의해 운명지워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쌍둥이로 태어났다면 부모 중에 쌍둥이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쌍둥이로 태어나게 된다.
부모가 어떤 이유에서이든지 쌍둥이를 버렸다면 쌍둥이가 고아가 되는 건 쌍둥이의 운명이다.
뉴욕에서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쌍둥이를 본 적이 있다.
둘 다 홀트재단을 통해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하나는 워싱턴으로 다른 하나는 뉴욕으로 보내졌고 둘은 커서 만나며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워싱턴 가정에 입양된 아이는 양부모가 늙은 데다 간섭을 하지 않고 키웠던 관계로 아이가 놀기 좋아했고, 학교에서도 말썽을 부렸으며,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공부가 싫어서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이다.
형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양부모 덕택에 제대로 공부했고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고등학교만 다닌 아이는 겉으로 봐도 개구장이 기질을 발견할 수 있는 용모였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매우 수단이 있었다.
그 아이가 뉴욕으로 이민온 가정의 또래 여자와 교제하고 있었는데
여자 부모가 반대하자 여자가 가출했고 전직 경찰관이었다는 아버지가 장사하는 쌍둥이를 찾아가 딸의 행방을 물었지만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날 찾아와 자기를 대신해서 그 남자 아이에게 딸을 돌려보내라고 말해달라고 했다.
내가 쌍둥이에 관해 알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에서였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는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서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운명에 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아이는 자연히 집을 나와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이때가 18세로서 법적으로도 성인이기 때문에 부모가 간섭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고 아이는 마음먹기에 따라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동거할 수 있다.
아이는 점포를 세 얻어 장사를 했고 다행이 돈벌이가 좋았다.
취직을 하는 것도 운명의 길 중 하나이겠지만 그는 장사를 선택했는데 이런 선택은 거의 운명에 가깝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 아이의 처지에서 직장을 갖거나 장사를 하는 것이 운명적이라는 점이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회의 길은 몇 되지 않다는 점이다.
뉴욕으로 이민온 전직 경찰관의 딸이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는 행동반경에 있게 된 것은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운명인 것이다.
불교에서 만남을 인연으로 보는데 운명이란 말로 대신할 수 있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연령에 다다른 남녀가 만나게 되었다면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자아이는 부모가 선택한 이민에 따라온 것이며 그 아이가 뉴욕에 거주하는 한국인 남자아이를 만나게 된다는 것은 여자아이에게는 운명인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 혹은 순조로운 삶의 방향이란 뜻이다.
두 사람의 환경이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이어지게 했는데
나는 이를 운명이라 부른다.
워싱턴에 있는 양부모를 방문하는 일도 적을 정도로 장사하랴 젊은 나이에 돈을 쓰고 다니랴 남자는 바쁜 생활을 했다.
남자는 곧 여자에게 싫증을 냈다. 돈벌이가 잘 되다보니 남자는 저축보다는 돈쓰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나이의 청년이 돈을 많이 벌어 그만큼 쓰고 싶은 충동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돈을 많이 쓰게 되면 한 장소나 한 사람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행동의 반경이 커지고 여러 곳에 가게 되고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남자는 술집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술집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느냐고 그 남자에게 물을 수는 없다.
아마 자신과 처지가 비슷해서 동정심이 발동했는지 모른다.
여하튼 너무 사랑에 몰돌한 나머지 장사에는 소흘하게 되었고 씀씀이는 줄지 않아 결국 빚을 많이 졌고 어느날 술집 여자와 달아났다. 하와이로 달아났다.
쌍둥이 형은 금융가에서 근무하며 정장차림에 사람들을 대할 때 공손했다.
그는 동생을 많이 걱정했지만 같은 나이에 동생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는 없었다.
그저 동생을 걱정할 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다.
그에게 열린 운명은 어떤 길을 선택해도 잘나가는 삶의 길이었다.
운명에도 선택은 있다.
하지만 어느 걸 선택해도 대체적인 운명의 폭 안에서의 선택일 뿐이란 것이 나의 지론이다.
나는 좀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이에 앞서 가능하다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환경을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환경을 달리 하게 되면 운명의 진로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환경 자체를 바꾸는 변화는 오로지 용기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용기 있는 사람의 운명은 그래서 한결 나아보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