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단토는 예술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관념이
아서 단토Arthur Danto는 예술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는 관념이 역사적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플라톤에 의한 철학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플라톤은 예술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는 행위로 보고 이에 대응할 만한 모방론을 만들어 유포시켰기 때문에 서양미술사를 단토는 "예술을 고립시키려고 한 플라톤의 예술론에 의한 미술의 억압사"로 본다.
그는 칸트가 미술품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무관심성 Interesselosigkeit'이란 말로 특징지운 것을 미술품은 자연처럼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과 관련지워서 두 사람 모두에게 비판을 가한다.
미술품은 어떤 것을 위해 유용해보이더라도 철학적 진실에서 보면 그렇지 못하며 논리적 무목적성은 그것을 사용하는 어떤 것도 오용이나 왜곡될 것이므로 그것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무관심과 관련있으므로 예술이 체계적으로 중립을 지켰던 것이다.
칸트는 예술이 분명 즐거움을 제공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며 이는 무관심한 즐거움이었다.
단토는 이를 실재 요구들의 만족이나 실재 목적들의 달성과 연고가 없는 이래 미온적인 만족감으로 보고 일종의 발작적인 즐거움, 즉 고통이 없는 가운데 존재하는 즐거움으로 본다.
칸트의 미학은 어느 특정한 본질이라도 가지지 않는 채 한 본질을 가진 것인양 보였으므로 바로 여기에 헤겔의 예술철학이 자리매김되었다는 것이 단토의 주요 견해이다.
역사 그 자체 스스로 자각되는 변증적 계시로 본 헤겔은 정신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가 정신임을 깨닫게되었을 때 역사의 종말이 온다고 주장했다.
이는 말하자면 칸트의 말로 특정한 본질에 대한 무지로 인해 그 자체에 소원하게 되었을 때가 아니라 그 자체를 통해 자체에 일치한 때 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은 예술과 철학이 각각 상이한 단계로 존재한다고 보고 철학을 자유롭게하는 것을 예술의 역사적 사명으로 간주했다.
철학이 자유롭게되면 예술은 그 역사적 사명을 다 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엄청난 철학적 비젼을 갖고 있던 헤겔은 예술의 그 완연한 형태 자체가 이미 철학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확증을 갖고 예술의 철학적 본질을 드러냄으로써 정신적 사명에서 해방된 것으로 보았다.
예술에 대한 철학적 특권박탈은 플라톤으로부터 시작되어 칸트로까지 이어졌지만 헤겔에 이르러 그 숙명적 특권박탈이 비로소 예술철학을 통해 예술과 철학 모두가 자유로운 모습으로 구현된 것이다.
이같은 내용이 스스로를 가리켜서 "거듭 태어난 헤겔리안"이라 칭한 단토의 요지이다.
이는 플라톤의 모방론을 종식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