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에는 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라는 것은 매우 몽롱하기 때문에 포착하기 어렵다.
포착을 못할 만큼 몽롱하지만 그 몽롱한 가운데 형상이 있고 그 몽롱한 가운데 사물이 있다.
그림자처럼 어두컴컴하지만 그 가운데 정력이 있다. 그 정력은 매우 순수하며 그 자체 속에 확신이 있다.
이 글에서 보듯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보이고, 귀에 들리지 않으나 들리는 무에서 형상이나 사물이 절로 나타나는 것이 도이다.
확실함은 순수함이나 진실과 같으며 진실하고 변함없는 형상이나 사물이 무로부터 형체를 취하여 나타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신비주의는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상카라의 다음과 같은 말이 노자의 사상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진정한 존재는 스스로 있고,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한 브라만이고,
변하지 않으며 변한 적이 없으며,
분리되지 않고 나눠지지 않으며,
유일하게 비이원적이다.
상카라는 브라만이 변경이나 변천을 거부하는 유일한 존재라고 말했는데
노자의 말로 바꾸어 말하면 무 또는 도는 변경이나 변천을 거부하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노자의 무 또는 도에 대한 사상을 상카라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변화란 단지 말뿐이다. 그것은 단지 명칭에 지나지 않는다.
상카라와 엑카르트의 영원한 존재는 노자에게 무 혹은 도에 해당하는데
<도덕경>에는 무 혹은 도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체는 일정하지 않으나 뭔지 커다란 혼돈이 천지에 앞서서 생성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리가 나지 않고 텅빈 것 같으나 독립하고 변함이 없으며, 보편적이고, 쇠퇴하지 않음으로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가령 도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은 대(크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합일되어서 천지에 선행하는 무 또는 도의 상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감각으로 포착할 수 없다.
무 또는 도는 영원히 만물이 존재하는 원인이다.
<도덕경>은 무 또는 도는 "아무리 사용해도 바닥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무 또는 도는 하도 담담하기 때문에 우리의 감관으로 포착할 수 있는 특색은 없지만 그 작용은 무진장이다.
무에서 생기는 유가 무진장이란 말이다.
엑카르트에게서 노자와 유사한 사고를 발견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의 단순한 본질은 형상들과 비형상들, 존재와 비존재, 생성과 비생성, 사물과 비사물을 주시하기 때문에 신은 생성되는 사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모든 사물에는 최후가 있다.
노자, 상카라, 엑카르트 모두 사물을 부인하는 방법으로 이론을 설명했는데
그와 같은 부정은 부정을 부정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노자의 무 또는 도가 상카라에게는 브라만으로, 엑카르트에게는 신이란 말로 사용된 것을 제외한다면 세 사람 모두 동일한 개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신비주의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이미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