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는 피치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김광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과학과 미켈란젤로의 영혼>(미술문화)에서  
 
 

15세기와 16세기 미술에 대한 철학적 정의는 플라톤주의와 네오플라톤주의를 따른 것이다.
'플라토닉 러브'란 말을 창안해낸 피치노의 플라톤과 플로티누스의 저술에 대한 주석이 패러다임이 되었다.
그가 행한 플라톤의 저작에 대한 주석과 플로티누스의 번역으로 해서 고대와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의 연관이 회복되었는데
이는 미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성과가 있는 일이었다.
묵상을 통해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플라톤이 말한 형상들의 순수이성의 의식에 몰입될 수 있다는 피치노의 주장은 플라톤이 가까스로 인정한 광기의 경우라 하겠다.
이런 영혼을 가진 사람은 예술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 피치노의 주장하는 바였다.

미켈란젤로는 피치노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피치노는 예술이 "자연보다 더욱 지혜롭다"고 했으며
미켈란젤로는 자연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최초의 미술사라고 말할 수 있는 <미술가 열전 Vite>을 쓴 화가이자 건축가 바자리Giorgio Vasari(1511-74)는 미켈란젤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꼽았다.

르네상스Renaissance(1300-1600)는 이탈리아어 리나쉬타Rinascita의 번역인데
재탄생rebirth 혹은 새로운 탄생의 뜻으로 미술에서는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로의 약진을 특징지운 말로 생겼다.
역사가 조바니 파피니Giovanni Papini는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된 동기가 미켈란젤로에게 있었다면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무덤(1505-1545)을 호화스럽게 장식하게 하려고 면죄부의 판매를 지나치게 늘였기 때문에 마틴 루터와 그 외의 사람들이 교회를 둘로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적었다.

미켈란젤로는 바로크의 아버지로도 칭송을 받는데
그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2)에 나타난 비틀거리고 긴장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바로크를 예고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를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바로크와 연계해서 언급하는 것은 미술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그에게는 엄청난 영예이다.

플라톤이 말한 형상들의 순수이성의 의식에 몰입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몇 안 되는데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1475-1564)가 그중 한 사람이다.
프란체스코 베르니Francesco Berni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그의 몇 작품을 본 적이 있지만
배운 바는 없더라도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플라톤의 저작에서 그것들 전부를 읽었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