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술 자체는 예술이라고 할 수 없지만
시인 샤를 보들레르와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외젠 들라크루아가 사진에 관해 언급한 내용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사진술이 제법 알려지기 시작한 19세기 중반의 일입니다.
1837년에 찍은 정물사진이 공식 사진이 발표되기 2년 전이었음을 감안하고 시대에 대한 이해를 하시기 바랍니다.
보들레르는 <1859년 살롱전>에서 사진이 현실의 무미건조한 복사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사진술을 무가치하게 평가했다.
반면 들라크루아는 이런 이유 때문에 사진술에 호감을 나타냈다.
들라크루아는 일광사진술협회Societe heliographique가 창설되기 한 해 전,
즉 1850년에 사진술에 대한 자신의 호기심을 밝혔다.
그에 따르면 사진술 자체는 예술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예술가의 보조수단으로서 "육안의 착오를 교정"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3차원적 부피, 빛의 점감 효과, 흐릿한 윤곽선 등을 2차원의 공간 속에 옮겨놓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진술 덕택에 르네상스 이후 사용되어온 오브제에 대한 전사(베끼기) 방법들이 더욱 완벽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상의 목적으로 들라크루아는 1847년부터 사진술을 이용했다.
1853년과 1856년 사이 그는 모델을 대신해서 사진을 사용했다.
그는 1855년 10월 5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열정적으로 그리고 조금도 싫증을 느끼지 않고 이 남성 누드사진을 감상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인간의 육체, 이야말로 정녕 기막힌 시라 할 수 있다.
이 사진들은 내게 인체를 읽는 법을 가르쳐주고 삼류 작가들이 지어낸 것보다도 인체에 대해 훨씬 많은 점을 말해준다.
앙리 제르네르의 말에 의하면 들라크루아에게 사진은 단순히 자료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강도의 명암이 만날 때 윤곽선이 드러나는" 훌륭한 데생으로서의 이미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