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시컬
고대 전통은 19세기까지 존중되었으며 고전classic이란 말이 고전 전통에 대한 규범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고대 로마의 세금을 측정하는 기준으로 다섯 단계로 나눠졌던 시민계급 중 최상급을 나타낸 라틴어 classis의 형용사 classicus에서 유래했다.
최상이란 뜻의 이 말이 2세기경 뛰어난 문학작품에서 범례적이란 의미의 문예용어로 사용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투시도법 발명에 의한 트롱프 뢰유Trompe-loeil(실재처럼 보일 정도로 정교한 사실주의의 그림을 일컫는 말로 눈속임이란 뜻이다)의 기술은 예술이 자연의 모방이라는 원리를 더욱 더 비약시켰다.
고전이란 말은 르네상스의 고전부흥운동 시기에 고대 미술품이 전형적인 규범으로 다뤄진 데서 유래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네오클래시시즘Neoclassicism이란 말은 백 년 전쯤에 생긴 말이다.
네오클래시시즘이 성행하던 당시에는 하나의 확고한 운동으로 인식되지 못했었음을 말해준다.
런던 왕립예술원에서 1893년 연례전시회가 개최되었을 때 신문에 기고하던 주요 평론가가 어느 화가의 역사화 <신들의 수면 the Sleep of the Gods>에 관해 언급하는 가운데 "예술에서조차 네오클래시시즘을 만들려는 사람도 먼저 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빅토리안풍의 한 점 그림에 대한 그의 언급에서 네오클래시시즘이란 말이 하나의 사조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1881년 이후 이런 말이 평론에서 사용되기는 했지만 푸생Poussin의 양식을 지적한 말로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그 말은 푸생의 그림을 설명하는 형용사로 사용되었는데
'고상함', '장엄함', '간소함'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1893년 이후 이 말은 좀더 폭넓게 사용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로서 1750년부터 1830년까지의 새로운 고전주의 양식으로서의 네오클래시시즘은 1920년대에서야 정립되었다.
18세기 초 영국 문학을 가리켜서 그리고 스트라빈스키를 포함한 19세기와 20세기 일부 작곡가들의 작품을 가리켜서 네오클래시시즘이라고 하는 건 미술에서의 네오클래시시즘과는 다른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