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오리엔트 
 

B.C. 336년, 200년 전부터 중앙 아시아에서 이집트에 걸쳐 고대 오리엔트 세계를 지배해온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다리우스 3세의 즉위식이 열렸다.
그리고 같은 해 그리스 북부의 작은 왕국 마케도니아에서도 젊은 알렉산드로스가 아버지 필립포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부왕 필립포스 2세는 아테네, 테베 동맹군을 격파한 뒤 그리스 도시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지중해 연안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확립했지만 암살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2년 뒤 B.C. 334년 역사적인 동방원정을 시작하였는데 그 목표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다.
이듬해 예루살렘을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B.C. 332년 시리아로부터 지중해를 따라내려와 7개월간의 포위 끝에 두로 요새를 합락시키고 이집트까지 진군했다.
구약성서에서는 이 사건을 이렇게 예언하였다.

북쪽 왕은 돌아가서, 처음보다 더 많은 군대를 일으킬 것이며, 몇 해가 지난 다음에 큰 군대와 장비를 이끌고 갈 것이다.
(다니엘서 11:13)
하드락 가까이에 있는 하맛에도, 매우 지혜롭다고 하는 두로와 시돈에도 그 말씀이 내린다.
(스가랴서 9:2)

알렉산드로스는 B.C.331년 가우가멜라Gaugamela 격전지에서 용맹스럽기로 이름난 페르시아 군대를 섬멸하는 데 성공했다.
그해 가을 페르시아의 왕궁들은 화염 속에 사라졌으며 스물다섯 의 알렉산드로스는 '아시아의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다리우스 3세의 시신을 페르시아 국장에 따라 장엄하게 장사지내도록 허락함으로써 승리자의 아량을 베풀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제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오리엔트 세계의 새 지배자가 되었고 점령 도시들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명명했는데 이 이름이 붙은 도시는 무려 70여 곳에 달했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연결해주는 관문에 위치한 유대의 지배자 역시 다리우스 3세에서 알렉산드로스로 바뀌었다.
신정국가 유대는 겉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았지만 유대교는 상당히 그리스화되었다.

알렉산드로스의 야심은 '아시아의 왕'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힌두쿠시를 거쳐 오늘날의 사마르칸트로 진군했고, B.C. 326년 봄 인더스 강을 건너 탁실라Taxila를 점령한 후 동쪽으로는 카불Kabul 협곡을 지나 인도와 오늘날의 서파키스탄으로 나아갔다.
10년이 넘은 이 대원정은 B.C.323년 여름 알렉산드로스가 열병으로 갑자기 사망하면서 끝났다.

어렸을 적에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교육을 받았던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 문화의 우수성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는 사도의 역할을 자처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인과 동방인들을 차별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약 800명의 장군들을 페르시아 여인들과 결혼시켰으며 페르시아 군인들을 마케도니아 군대에 편입시켰다.
그의 무차별 정책은 오리엔트 문화의 그리스화와 그리스 문화의 오리엔트화를 동시에 이루어 헬레니즘 시대를 여는 역사적 의의를 남겼다.
그의 위대함은 훗날 신격화로 나타나 로마의 젊은이들은 그를 신으로 믿으며 숭배했다.

서른두 살의 알렉산드로스가 후사도 없이 사망하자 심복 장군들은 제국을 차지하려고 후계자 전쟁을 벌였으며 그 결과 헬레니즘 3왕국 즉 시리아, 마케도니아, 이집트로 나뉘어졌다.
우리가 유대 역사와 관련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 왕조는 둘이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수도를 정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ios 왕조와 시리아의 안디옥(안티오키아)에 수도를 정한 셀레우코스Seleukos 왕조이다.

이집트와 시리아 사이 군사, 상업상 요충지에 위치한 유대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통치를 받았다.
B.C. 198년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3세가 요단 강 근처 파니온Paneion(가이샤라 빌리보를 말한다)에서 이집트의 군대를 섬멸하고 예루살렘으로 진군하면서부터 유대는 시리아의 통치영역으로 들어갔다.
군중들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 안티오쿠스 3세는 한 장관에게 칙령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그들의 도시로 들어갈 때 중의회의 지휘하에 열렬히 환영하며 군인들과 코끼리에게 먹을 것을 넉넉히 주었고, 성에 있던 이집트 점령군을 멸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유대에 호의적이어서 성전 확장공사에 원조를 해주었으며 성전 제사에 사용할 물건들을 공급해주었고 제사장들에게는 면세의 특혜를 주었다.

유대는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제국, 이집트와 시리아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종교의 자율성을 보장받았다.
유대인들은 통치자에게 세금을 받치긴 했지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성전 중심의 국가를 형성할 수 있었는데 신에 의한, 신을 위한, 신정국가 체제였다.
헌법은 모세 5경, 즉 구약성서의 첫 다섯 권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있는 사제법을 따랐다.
예루살렘 성전의 간리를 책임진 대제사장은 신정국가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대제사장직은 B.C. 960년경 솔로몬 왕 때부터 시작된 전통에 따라 사독Zadok의 가문에서 선출되었다.
유대의 제3대 왕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야훼께 바치는 성전을 건립하고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생긴 이 전통은 대대로 내려오다가 시리아의 지배 때 메넬라우스Menelaus에 의해 깨지고 만다.
열광적 헬레니즘주의자 메넬라우스는 안티오쿠스 4세에게 금화를 바치고 사독 가문이 아닌 데도 대제사장직에 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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