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예수는 삼십대 초반이던 27년 혹은 28년 초봄에 고향 나사렛을 떠나 유대 광야로 갔다.
청년 예수의 행적이 복음서에 등장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당시 유대교의 주류인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활약한 반면,
그들에게 반감을 가졌던 비주류 종교운동의 지도자들은 주로 광야에서 활동했다.
세례자 요한 역시 광야에서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광야로 간 예수는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한동안 요한의 제자가 되어 광야에 있었다.

맑고 푸른 갈릴리 호수에서 흘러나온 물은 요단 강을 이루며 유대 광야 옆을 흐른다.
그 물로 예수는 세례를 받았다.
세례의식은 네 복음서 저자들이 모두 빠지지 않고 기록하였듯이 예수에게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는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세례자 요한이 분봉왕 안디바에 의해 처형당하자 예수는 광야가 자신의 사역자로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요한과 같은 최후를 맞고 싶지 않았던 예수는 갈릴리를 자신의 사역 지역으로 생각하고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갈릴리 사람들은 유대 사람들에 비해 교육을 받지 못했고 고집이 셌다.
이들은 유대 사람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았으나 훨씬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고 있었다.
예수는 가버나움에 거처를 정하고 갈릴리에 있는 동네들을 방문하면서 설교하고 병자들을 고쳐주었다.
당시 갈릴리는 안디바의 통치영역이었다.
예수는 안디바가 새로 건설한 도시에는 가지 않았으며 부자들이 사는 동네에도 가지 않았다.
그는 가버나움, 벳새다, 거라사 등 주로 버림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는 회당이나 산과 들에서 설교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외에도 병자들을 직접 고쳐주는 것도 그의 사역에 포함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를 지상에 이룩하는 것을 자신의 사역 목적으로 삼았다.
그가 병자들을 고쳤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갈릴리 전역에 퍼졌으며 연일 병자들이 그에게 몰려왔다.
가르침을 듣고 병자들을 고치는 기적을 직접 보려고 오는 사람들의 수는 나날이 늘어갔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더이상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갖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가르쳤으며 새로운 계명을 선포하여 낡은 율법으로 인한 속박에서 그들을 자유롭게 했다.

예수가 얼마 동안 활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예수가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세 번 갔다고 기록했는데 그렇다면 그 기간은 3년이 된다.
그러나 공관복음서 저자들은 그가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간 것을 한 차례만 언급했으므로 그것은 1년에 해당한다.
예수의 활동은 27년 혹은 28년 이른 봄부터 시작되어 29년 혹은 30년 4월 7일에 마감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예수가 안디바가 단장한 성전을 비유로 들어 말한 적이 있는데 안디바가 성전을 건축한 시기가 27년과 28년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하였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짓는 데 마흔여섯 해나 걸렸는데 이것을 사흘 안에 세우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자기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요한복음서 2:19-20)

예수는 30년 4월 초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자신의 사역을 마감했다.
그는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 자신이 생명이며 또한 부활임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으며,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내쫓아 하나님의 집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되돌려놓았다.
이는 마치 유대교에 대한 정결의식과도 같았다.
이로써 그는 지상에서의 과업을 마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주었다.

이 글은 나의 저서 <예수 이야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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