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디슨에 의해서 "아름다운 것과 숭고한 것"은
숭고한 감정이 예술의 과제로 부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에 대한 이론이 유일했고 또 가장 중요했다.
숭고sublime는 근본적으로 미와는 다르다. 미에서는 기쁨과 명랑한 감정이 생기지만 숭고에서는 경탄과 두려움이 생긴다.
미와 숭고 모두를 상상력을 끌어당기는 특질로 본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18세기가 막 시작될 무렵의 영국인 조셉 애디슨Joseph Addison(1672-1719)이었다.
취미를 예술철학의 주요 과제로 제안한 그는 취미를 '상상력의 즐거움'을 일으키는 세 특성들로 보고 그것들을 숭고함(혹은 탁월함), 비범함(혹은 진기함), 그리고 미를 단순히 분별하는 능력으로 간주했다.
애디슨에 의해서 "아름다운 것과 숭고한 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영국 미학에서 하나의 보편적 공식이 되었다.
이는 에드문드 버크Edmund Burke(1729-97)가 1756년에 출간한 <숭고와 미에 대한 우리 관념의 기원에 관한 철학적 논구 A 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the Beautiful>의 제목과 내용에서 숭고와 미를 병렬한 후 더욱 그랬다.
버크의 저서는 영국인의 미적 취미에 영향을 주어 18세기 초 고전적 형식주의로부터 후반의 낭만주의로의 전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현상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두 측면에서 대상들의 어떤 특성들이 우리로 하여금 미에 대한 느낌, 즉 욕망이 없는 '사랑'과 숭고, 즉 실제 위험이 없는 '경악'을 자극시키는지에 관해 논했다.
숭고한 것에 대한 느낌은 그것을 응시하는 것에 의해 정신에 가득차는 공포의 정도, 즉 조절된 전율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고통과 위험의 개념들을 자극할 수 있거나, 그런 대상들과 연합된 것들이거나, 혹은 유사한 방법으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특성들을 지닌 대상들 어떤 것이라도 숭고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버크에게 미는 즐거운의 개념으로 인간의 사회적 본능과 관련이 있는 반면 숭고는 고통과 위험의 개념으로 낯선 감정을 야기시키는데
그의 표현으로 말하면 자아보존의 원리와 관련이 있다.
미는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반면 숭고한 감정은 감정적으로 격렬하게 만든다.
숭고는 증명되거나 제시될 수는 없더라도 갑자기 와서 감정을 흔들어놓고 느끼게 하는 경이로운 것이다. 이런 상이한 경험은 상호 모순된다.
버크는 "왜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이 재현된 실재를 바라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가?" 하는 문제에 집착했다.
그는 진정한 고뇌와 재난은 관람자에게 순수한 고통을 주기보다는 경험이 증명하듯 매혹시키고 황홀하게 만드는 것을 알았다.
버크는 숭고에 기여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강력하며, 결성과 공허, 무한에 가까운 광대함 등을 꼽았다.
이런 것들은 미를 죽은 것으로 그리고 효력이 없는 것이 되게 한다.
플라톤에 따라 미를 유일한 가치로 받아들일 경우 이와 상반되는 추함은 미적 가치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게 된다.
버크는 추함조차도 미적 감상의 한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는데
이런 사고는 19세기와 20세기 표현 개념의 초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