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의 아들 알렉산더Alexander의 가정교사로 취직된 건 기원전 343년이었다.
그때 알렉산더는 13살이었고 그가 16살이 될 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르쳤다.
인류의 역사에서 최대의 철학자와 최대의 정복자가 이런 인연을 맺은 건 특기할만 하다.
사람들은 두 사람에 관해 갖가지 말들을 하지만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없고 그렇게 때문에 전설처럼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믿을 만하지 못하다.
두 사람이 서신을 주고 받았다면서 사람들은 알렉산더가 스승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증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만났다는 기록이 두 사람이 사망한 지 600여 년이 지난 후 사가 사마천이 쓴 <사기>에 적혀 있지만 사마천이 전래되는 이야기를 기록했을 뿐 근거 있는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너무 오래전의 역사는 그래서 갖가지 소문으로 전래되지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 된다.

독일 철학자 헤겔Hegel은 알렉산더의 행위에서 철학의 실질적 유용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해 은근히 그가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벤A. W. Ben은 저서 <그리스 철학자들 The Greek Philosopher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알렉산더는 오만했고 술주정뱅이였으며 잔인했고 앙심을 품었으며 지독하게 미신적이었고 하이랜드Highland 우두머리의 악행들과 동양 폭군의 광포와 동일했다.

이렇듯 그에 대한 악담이 있으나 사람들이 알렉산더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그리스 문명의 모든 전통이 소멸될 즈음에 그가 그리스 문명을 여러 나라에 홍보하고 찬양하여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한 때문이다.

그는 과연 그리스 문명을 널리 퍼뜨린 사도였다.

그는 아버지를 닮아 야망과 열정을 가진 소년이었으며 벤의 설명을 띠르면 공부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는 그리스 문명에 존경심을 나타냈는데 당시 마케도니아인들은 자신들이 야만인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무조건 그리스 문명에 존경을 표했다.
알렉산더에게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만한 머리가 없었던 것 같고, 위대한 철학자의 가르침은 나무아비타불이었던 것 같으며, 위대한 두 사람의 만남은 철학적으로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 같다.

공자와 맹자를 만난 왕들이 위대한 사상가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처럼 알렉산더 또한 위대한 철학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알렉산더가 열병으로 사망한 기원전 323년까지 12년 동안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그는 학교를 설립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필하는 데 몰두했다.
알렉산더가 사망하자 아테네 시민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으며 알렉산더의 친구들에게 증오심을 나타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안녕을 위해 아타네를 떠났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아테네 시민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그와 알렉산더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알렉산더가 스승에게 늘 존경을 표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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