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인은 기원전 
 

스파르타인은 기원전 8세기에 메세니아Messenia의 이웃나라들을 점령했고 그 나라들의 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스파르타인들의 유일한 사업은 전쟁이었고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전쟁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
병약한 아이들은 부족장이 아예 죽여버렸으며 20살이 될 때까지 모든 소년들은 커다란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고 훈련을 통해 튼튼한 체력과 고통을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
오로지 훌륭한 군인을 배양하는 것이 국가의 목적이었다.
20살이 되면 군인이 되고 결혼은 이후에나 허락되지만 30살이 될 때까지 사내들의 집Men's House에 합숙해야 했다.
그러므로 결혼생활은 비밀처럼 해야 했다.
30살이 되야 완전한 시민이 되는 것이다.

모든 시민은 회식에 속하고 여러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하며 시민들은 농노로부터 수령한 곡물의 일정양을 나라에 바친다.
국가의 정책은 스파르타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궁핍해서는 안 되며 또한 어느 누구도 부자이여서는 안 된다.
시민은 각각 자신에게 나눠진 땅의 소출로 생활하며 무료로 선사하는 것은 용인되지만 양도할 수는 없다.
농지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소유인 것이다.

스파르타인은 금이나 은을 소유해서는 안 되고 돈은 쇠로 만들어 사용했다.
스파르타에서 여인들은 그리스에서와는 달리 격리되지 않았고 소녀들도 마찬가지로 소년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는데 소년 소녀 모두 벌거벗은 상태로 함께 훈련을 받았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에 소년 소녀가 벌거벗은 몸으로 전쟁놀이를 하는 그림이 있다.

여자들에게는 감정을 노출하는 것을 금했고 출산한 아이가 병약해 죽임을 당해도 슬퍼해서는 안 되었다.
전쟁에서 아들이 전사했다고 슬픔을 보여서도 안 되었다.
아이를 못낳는 여인은 국가가 지정해주는 다른 사내에게로 가서 아이를 임신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세 아들을 둔 어버이는 군대징집에서 면제받았고 네 아들을 둔 어버이는 국가로부터 모든 의무를 면제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