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temple에서

그리스 중앙에 위치한 보에티아Boetia에서 기원전 70년경에 태어난 헤시오드Hesiod는 그리스 후기 서사시 시대의 첫 번째 시인으로 기원전 8세기 후반에 살았다.
그의 영향은 4세기 동안이나 지속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리스인들은 시인을 교사처럼 여길줄 알았으며 시인을 신비적 영감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호메로스Homer의 종교적 교리와 도덕적 가르침을 연계해 소개했으며 정의의 문제와 신들의 성격을 설명하면서 문학이 단지 즐기는 것 그 이상이라는 전통주의 사상을 거듭 촉구했다.
그는 서양문명에 최초로 시에 대한 관점 또는 지침을 말한 시인으로 알려졌다.

헤시오드는 인생을 진진하게 관망했으며 시집 <시들의 탄생 Theogony>에서 (제목은 그가 정한 것이 아니다) 신들의 추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면서 우라누스Uranus, 크로누스Cronus, 그리고 제우스Zeus 사이에 하늘나라를 제패하기 위한 그들의 탐욕이 싸움박질로 나타났음을 기술했다.
그는 정의를 여신처럼 여기면서 사람들이 정의를 두려워할 것을 독려했으며 정의의 여신을 달래는 것이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했다.

그는 노래부르기를 좋아했으므로 가창대회에 출연해 수상했는데 당시 상은 흔했으며 오늘날 트로피 정도에 해당했고 상금이 두둑했던 건 아니었다.
이때 그는 처음 외국을 방문했다고 했는데 가창대회가 살시스Chalcis에서 열렸기 때문에 외국으로 간 것이라고 했다.
살시스는 그리스 본토로부터 겨우 700m 또는 800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2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이다.
그것도 외국이라고 처음 갔다니 그는 매우 게을렀던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헬리콘 산Mt. Helicon 근처 아스크라Ascra 마을에서 보낸 목석과도 같은 사내였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가깝하게 산 사람 중에 위대한 철학자가 있는데 그 분이 칸트이시다.
그는 평생 고향에서 보냈지만 런던브리지가 돌 몇 개로 지어졌는지를 알 정도로 바깥 세상에 정통했다.
헤시오드 역시 우물 안의 개구리였지만 하늘이 둥글다고 주장하지 않고 정신세계를 확장해서 종교와 문학의 진수를 깨달았다.

그리스 문학은 대중을 위한 festival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시와 드라마는 종교에서 비롯한 예술이다.
서양에서 시는 사원temple에서 비롯했고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시는 절에서 사용한 말로 절 사자 말씀 언자를 합해 시라 한다.
그리스의 드라마는 종교의 의식에서 진전되었으며 그리스의 첫 드라마는 포도주의 신 박카스(혹은 Dionysus)를 찬양한 합창곡에 춤과 판토마임이 혼용된 것이다.
기원전 535년에 테스피스Thespis가 박카스를 찬양하는 합창에 처음으로 배우 한 사람을 등장시켜 배우의 대사를 합창과 조화가 되게 했으며 이후 100년 동안 더욱 더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진전되었다.

유명한 세 비극작가가 아테네에 출현하자 비극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 세 비극작가가 애킬러스Aeschylus, 소포클레스Sophocles, 유리피데스Euripides이다.

기원전 5세기에 세 작가의 비극 300점 이상이 공연되었으며 현존하는 작품은 33점에 불과하다.
그리스의 드라마에는 여전히 종교적 요소들이 남아 있었지만 과거 문학에 비하면 그 내용이 현저하게 준 것이다.
잘 알려진 비극들은 시민이 주로 모이는 장소에서 공연되었으며 그리스인은 우리가 <마담 버터플라이>나 <돈주앙>을 관람하러 가듯 이미 비극의 줄거리를 알고 공연장에서 가서 관람했다.
따라서 드라마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