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행각과 불륜의 사랑
기원전 400년경에는 노예들의 음모행각과 불륜의 사랑을 주제로 한 드라마도 소개되었다.
그리스 문학은 빠른 속도로 발전했으며 그리스인의 평균 지성도 많이 나아진 편이라서 작가들이 주저리주저리 서술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알아서 이해하곤 했다.
그리스 문학은 아테네에서만 성행한 것이 아니라 인근의 나라에까지도 알려져 그리스 문학의 영향이 한층 커졌다.
소위 말하는 대중문화 수출이 이미 발생한 것이다.
아테네는 문화의 도시로 알려졌고 중동 전지역과 지중해 연안의 국가들이 그리스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했다.
신약성서 저자들이 그리스어로 쓴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당시 그리스어는 오늘날의 영어보다 더욱 더 공용어가 되었다.
여기에는 알렌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기원전 356-323)의 침략과 더불은 그리스 문화 팽창확대 정책에 기인했다.
예수가 십자가 못박혀 처형당했을 때 십자가 위 팻말에는 당시 침략국 로마어 외에도 그리스어가 히부리어와 함께 적혀 있었는데 그만큼 그리스어가 오랫동안 공통어로 통용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알렉산더가 열병으로 33살에 요절하지만 않았더라도 그리스 문화는 더욱 확대되었을 것이며 좀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앞서 언급한 대표적인 세 작가의 사망과 함께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작품은 오랫동안 공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뉴욕에서 런던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공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