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의 개혁정신
 

부다Buddha가 갠지스 끝 북쪽에서 태어난 때는 기원전 6세기였다.
그의 본명은 시다르타 고타마Siddhartha Gautama였고 브라만 계급이 아니라 무사 계급의 왕자였다.
그는 안일한 삶에 불만이 많았고 깨달음을 위해 처자를 두고 가출(혹은 출가)했다.
그는 금욕주의 생활을 하면서 7년 동안 스승들을 찾아다녔지만 자신이 원하는 가르침을 얻지 못했다.
그후 그는 더이상 스승을 찾지 않고 스스로 깨달은 바가 있어 금욕주의 윤리로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시작했다.
스스로 스승이 된 것이다.

부다는 정신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라고 사람들을 가르쳤다.
이런 그의 가르침은 별로 새로운 것이 못되었는데 우파니샤드Upanishads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700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한 마디로 말하면 정신이 물질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개인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힌두교의 경전인 우파니샤드의 가르침과 부다 그리고 자이니즘의 창시자 마하비라Mahavira의 가르침이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과거 힌두교는 요가와 도덕적 행위를 통해 구원이 가능하다고 가르치면서 브라만은 자신들을 베다를 통해 은근히 내세웠다.
요가Yoga는 여섯 시스템Six-Systems 중 하나로 그 뜻은 방법 또는 기교인데 몸을 조절하는 것이 명상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브라만이 가르친 것이다.
요가를 수행하는 사람을 요기Yogi라 부른다.

부다와 마하비라는 브라만으로 구성된 계급사회를 반대했으며 특히 부다가 더욱 더 반대했다.

부다는 말했다.
"브라만은 태어날 때부터 브라만일 수 없으며
천한 계급은 태어날 때부터 천한 계급이 될 수 없다.
천한 계급의 사람은 자신의 행위로서 그리 되는 것이며
브라만 또한 자신의 행위에 의해 그리 되는 것 뿐이다.'

부다는 사회의 개혁을 외친 용감한 사람이었다.

부다의 중용사상
공자와 마찬가지로 부다에게도 중용사상이 있다.
그는 금욕주의와 무제한의 욕망 사이의 중간 또는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것을 삶을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인식했으며,수행을 위한 힌두교 전통의 요가방법을 실질적인 방법론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부다는 네 가지 고상한 진리Four Noble Truths를 발견했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바카스 종교와 마찬가지로 부다는 인생이 윤회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인간의 존재dukkha는 영원한 윤화의 굴레 속에 묶여 있는 것으로 보았다.
2. 훗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우리가 윤회의 굴레에 묶여 있는 이유로 부다는 환상적인 자연현상에 대한 우리의 무지avidja와 그러한 환상에 대한 욕망tanha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3. 윤회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물론 무지와 욕망에서 벗어나야 하며 이런 행위는 최종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인데 구원이란 열반Nirvana에 도달하는 것으로 보았다.
4.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여덟 가지의 방법Eightfold Path을 부다는 방법론으로 제시했는데 이런 방법은 윤리sila와 명상samadhi의 혼용으로 지혜panna와 최고의 사유경지Enlightenment(혹은 Bodhi라고도 함)에 도달하는 궁극적인 구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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