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가 도입한 ‘무관심’의 개념


칸트가 도입한 ‘무관심’의 개념은 심미적 경험을 만족스럽게 밝혀주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칸트 이후 많은 철학자들이 그의 입장에 서서 심미적 경험이 칸트의 관점에서 이해된다고 믿어 왔다.
‘무관심’은 대상을 경험할 때 취할 수 있는 하나의 태도로서 박이문은 실천적 의미, 즉 구체적인 목적과의 관계를 떠난 태도로 본다.
칸트의 ‘무관심’의 개념은 20세기 초 여러 학자들에 의해 또 다른 개념으로 전환되었는데, 에드워드 불로우Edward Bullough는 1963년의 논문 ‘정신적 거리Psychical Distance’로, 제롬 스톨니츠Jerome Stolnitz는 1960년의 논문에서 ‘무관심한 주의’로, 버질 알드리치Virgil Aldricj는 『예술철학 Philosophy of Art』(1963)에서 ‘무엇 무엇으로 봄’으로 칸트의 ‘무관심’의 개념에 대체할 만한 개념을 제기했지만, 세 사람 모두 근본적으로 칸트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들 모두 칸트와 마찬가지로 심미적 경험의 특수성이 별도로 존재한다고 보고 그 특수성을 경험자의 태도에서 찾아낼 수 있으며 그 특수성은 비실천적인 태도에 있음을 주장한다.

미적 가치 혹은 심미성에 대한 칸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사람은 비어즐리와 디키로 비어즐리는 심미적 가치를 경험자의 태도에서가 아니라 경험 대상 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디키는 심미적 경험이 요구하는 특수한 태도, 즉 심미적 태도의 존재를 부정한다.
비어즐리는 작품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관찰의 대상이 될 때 그것은 심미적 대상이며 심미적 경험은 그런 대상으로부터 갖게 되는 지각적 성질로 규정한다.
박이문은 『예술철학』에서 비어즐리의 주장은 순환적인 논리에 잡혀 있다면서 예술작품을 순수하게 예술작품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적 가치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미적 가치를 예술작품을 예술작품으로 보는 데서 설명하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비어즐리는 심미적 경험과 심미적 가치를 오직 예술작품 속에서만 찾으려고 하지만 우리는 예술작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비예술작품이나 자연 형상에서도 얼마든지 심미적 경험을 하게 되고 심미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이다.
심미적 가치는 오로지 예술작품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므로 심미적 가치는 예술작품의 한계를 넘어서 모든 대상에 대한 경험과 관련하여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박이문의 논지이며 그는 심미적 가치를 경험자의 태도에서 찾는 것이 심미적 가치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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