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는 직관으로서만 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야나기는 직관으로서만 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그에게 직관은 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절대적인 입장이었다.
이는 신비주의로서만 설명될 수 있는데, 내가 미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미가 미를 보는 것으로 기독교적 신비주의로 말하면 신이 나로 하여금 바라보게 하는 혹은 신이 자신을 관조하는 일체를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이 그 자체를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찾으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거울로 반사하듯이 보는 것이다.
그는 공예를 중생에게 생활의 반려伴侶이며 순례의 동행 이인二人 혹은 한 쌍으로 보았고, 미와 중생, 그 사이에 숨은 언약,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미에 관여할 수 있는 길”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공예를 통해 중생은 구원의 세계로 들어간다. 공예의 길은 미의 종교에 있어서 타력도라 할 수 있다.”

절대적 입장에서 일체를 이루는 신비주의 사상에서 그는 공예의 미를 규정했다.
"준엄하다든지, 숭고함이라든지, 멀리 우러르는 세계가 아니라 보다 밀접하고 친숙한 영역이다.
따라서 공예는 정취의 세계, 즉 윤택함이라든지, 정취라든지, 촉촉함이라든지, 훈훈함이라든지, 부드러움이라든지 등의 말이 기물의 아름다움에 관해 되풀이되는 세계이다."

야나기는 민예의 기능을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방법 타력본원他力本願, 즉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본원에 따라 염불하면 정토에 왕생한다는 범부성불의 방법론에 의탁하는 정토종의 종지宗旨로 보았다.

야나기가 조선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조선 예술에는 타민족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민예적 특성이 두드러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선 공예품에서 친근감, 온화함, 안으로 숨은 경이로운 아름다움, 깊은 맛, 조용함, 적막함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점을 들어 그는 중국 도자기와 조선 도자기를 비교할 경우 조선 도자기가 “더 조용하고 소박하다.
마음에도 급한 데가 없다. 같은 분명함이라도 한결 온화하고 조용하다”면서 “중국 것은 우리가 기다리든 기다리지 않든 언제나 저편에서 다가온다.
조선 것은 이쪽에서 찾든 찾지 않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린다”고 했다.
조선의 민예적 특성을 그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애완하는 풍습이 있지만 이런 풍습이 조선에는 없어 미를 위한 미를 추구하지 않고 모두 실용품으로 제작되었음을 꼽았다.
그는 조선의 도자기는 작위의 폐를 벗어났으며 “만듦새는 자연스러우며 소박하며 약한 데가 없고 신경질적인 데가 없다”고 말함으로써 중국과 일본에 비해 가장 민예적임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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