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1834~96)


영국 시인, 예술가, 공예가, 장식가, 사회운동가 윌리엄 모리스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했고 그곳에서 번 존스Sir Edward Coley Bume-Jones(1833~98)와 평생의 친구가 되었다.
번 존스는 모리스를 만나 미술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이탈리아계 영국 화가, 시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1828~82)와의 만남이 그로 하여금 화가로 전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러스킨과 영국의 건축가 퓨진Augustus Welby Northmore Pugin(1812~52)의 저작을 읽으면서 시를 Tm고, 중세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모리스는 1861년에 장식 공예 회사인 모리스 마셜 포크너 회사를 설립했으며, 로제티와 번 존스, 매독스 브라운, 피립 웨브 등이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모리스는 이 회사를 통해 19세기 후반의 영국 산업 디자인과 실내장식 디자인 부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대중의 취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모리스의 벽지 디자인은 아주 유명해졌는데, 디자인계에 끼친 그의 영향은 가구, 태피스트리, 스테인드 글라스, 가구에 사용하는 직물, 카펫 등 많은 분야에 걸쳐 있었다.
태피스트리는 그의 공장에서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
1891년에는 인쇄와 책 디자인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켈름스콧 인쇄소Kelmscott Press를 창립하여 개인 인쇄소의 선구자가 되었다.
모리스가 1871년부터 살던 옥스포드 근교의 마을 이름을 딴 켈름스콧 인쇄소에서는 1891년부터 모리스가 죽은 지 2년 후인 1898년까지 55권 총 65책을 발행했다.
모리스는 책을 폈을 때 보이는 양페이지를 기본 단위로 해서 화자체, 테두리, 장식 그리고 속표지의 대부분을 스스로 디자인했다.
그는 활자 서체를 다지안하고 특히 중세의 고딕 활자를 부활시켰다.

모리스는 예술을 노동에 대한 즐거움의 표현으로 정의하고 미술의 개념을 사치의 한 속성으로 보고 거부했다.
또한 미적 활동은 생활 전체를 감싸안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특히 보편적인 수공예라는 이상에 몰두했다.
그는 중세 시대는 유럽 역사의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예술과 생활이 하나로 융화되고 보편적인 수공예가 살아 숨 쉬던 시대라는 신념으로 중세주의 사상을 주창하고, 그와 같은 시대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구제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의 중세주의에는 낭만주의적인 요소도 있었다. 이는 그와 공동으로 일했던 라파엘 전파의 예술가들에게 좀 더 현저한 특징으로 그들이 디자인 분야에서 한 작업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그가 주창한 보편적인 수공예라는 이상과 수작업에 대한 찬미는 근대적인 기계 생산과 맞닥뜨리면서 점차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일상생활 속에서의 좋은 디자인과 숙련된 장인 정신의 사회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오랫동안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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