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나기는 미가 실용에서
야나기는 미가 실용에서 유리된 까닭에 찬미되었다면서 미의 진실성을 찾으려면 실용적인 공예품에 눈을 돌려야 함을 『공예의 도』에서 역설했다.
“미는 하나이지만 미의 핵심에 이르는 길은 둘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미술fine art이라 부르고, 하나는 공예craft라고 부른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미의 표준은 사실 미술에서만 논해져 왔다.
따라서 공예는 낮은 위치로 전락하고 그 의의는 무관심 속에 버림을 받았다.
미학 책들을 보라. 그것은 완전히 미술 위에 세워진 미학이 아닌가.
공예는 야나기는 unfreie Kunst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또한 practical art로도 applied art로도 불렸다.
여기에서 부자유라든가, 실제라든가, 응용이라든가 하는 형용은 몇 단계나 격하된 의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와 같이 미는 실용에서 유리되어 있는 것인 까닭에 찬미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미학이 과연 미를 진실되게 본 것이었을까.”
야나기는 공들인 상등품上手物보다는 하치물건下手物 혹은 잡구에 오히려 보편적인 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점을 『일본 민예미술관 설립취의서』에서 밝혔다.
“우리들은 이러한 미가 미술품이라고 간주되는 것에는 오히려 적고, 반대로 잡구雜具라고 생각되는 소위 하치물건에 많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원래부터 미는 도처의 세계에 숨어 있다.
그렇지만 이미 상등품은 섬약에 흐르고 기교에 빠지고 병마에 괴로워한다.
그에 반해 무명의 공인에 의해 만들어진 하치물건에서는 추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거기엔 작위의 상처가 거의 없다. 자연스럽고 무심하며 건강하며 자유롭다.”
야나기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공예운동Art and Craft과 아르 누보Art Nouveau의 이론적 배경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공예의 미술화를 추구한 존 러스킨에 대해서 “세계를 미술의 천국으로 높이기 위해 지상의 공예를 포기했다”고 비판했으며, 윌리엄 모리스의 작업은 “공예로 되지 못한 채 끝난 미술”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런 비판에서 공예에 대한 그의 궁극적인 시각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