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의 특질
이경성은 『미술입문』(1961)에서 한국 미술의 특질로 감성적·선적·서정적·소시민적 네 요소를 꼽았다.
그에 의하면,
첫째,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비애에 충만되어 있어 감상적이며 그런 예를 인생의 허무함과 애처로운 인간심정을 노래한 시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서 감성성을 지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둘째, 선은 정서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고구려 벽화의 웅건한 선, 석굴암 불상의 우아한 선, 고려자기의 세련된 선, 이조자기의 소박하고 우직한 선, 그리고 이조 목공품의 힘찬 선이 우리의 전통이며 도한 한국미의 약점으로 꼽는다.
셋째, 공예품에서 많은 걸작이 발견되는데 삼국시대 이전 도자기, 가구, 금공품 등에서 수준 높은 솜씨를 보여준 한국인이 그 후 좋은 솜씨를 보여주지 못한 이유를 통일신라 이후 정착생활의 안이와 평안을 주조로 하는 무사주의 그리고 대륙의 압력에서 오는 비애 속에 형성된 서정적 감성 때문으로 꼽았다.
마지막으로 역사적으로 비극을 많이 겪다보니 한국인은 이상과 영원을 약탈당했고 늘 오늘의 문제에 골몰해야 하는 소시민이 되어버렸으며 강한 인간형人間型을 창조하지 못하고 영탄적詠嘆的인 인간형이 되어 자연히 미술이 소시민적이 된 것이라고 했다.
한국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론은 야나기의 ‘비애의 미’와 고유섭의 ‘적조미寂照美·무기교無技巧의 미’이다.
고유섭은 1940년 10월 23일~27일 『조선일보』에 발표한 ‘조선 미술문화의 몇 낱 성격’에서 시도한 학설을 토대로 한국 미술의 특징으로 무기교의 기교·무계획의 계획, 즉 민예적 미로 꼽으면서 한국 미학은 비정제성·비균제성·무관심성·구수한 맛 등으로 추리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민예적 특징으로서 이를 먼저 주장한 사람은 야나기이다.
야나기는 민예民藝에서 미를 발견하면서 생활과 미가 결합된 공예의 미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참다운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생활과 긴밀히 결합”되었기 때문에 “미술은 공예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민예의 의미』(1931)에서 민예를 규정했다.
“민民은 원래 민중의 민이고 예藝는 우리의 의미로는 공예工藝의 예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민중적 공예’의 약칭으로서 민예 두 글자를 골랐던 것이다.
민중예술이라는 의미라 해도 좋으나 예술이라고 하면 자칫 개인적인 고급 미술 등을 연상시키므로 좀더 이름도 없는 공인工人들이 만든 실용 공예품이라는 의미를 시사하고 싶어 ‘민중적 고예’의 의미를 취해 민예라 부르게 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영역할 경우에도 Folk Art라는 어휘를 피해 Folk Craft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