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 관해서 알려진 바는 
 

소크라테스에 관해서 알려진 바는 적으나 그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비교해서 책을 쓴 사람도 있는데 그만큼 소크라테스는 서양에 익히 알려진 인물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서양세계에 유명하게 만든 것처럼 플라톤이 그를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당시 아테네는 소피스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고 프로타고라스는 유명하다.
소피스트와 달리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지식을 제공하면서 돈을 받지 않았다.
만약 소크라테스가 돈을 받고 가르쳤다면 그는 소피스트로 알려지고 철학자란 명예로운 명칭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소크라테는 논쟁의 명수로 많은 논쟁이 전해오며 결국 논쟁으로 인해 기원전 399년에 사형당했다.
그때 그의 나이 약 70세였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사람들에게 유명했는데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가 작품 <구름 The Clouds>에서 철학자는 세상사에 어두운 인간이라고 조롱했으므로 더욱 유명해졌다.
철학에 대한 작가의 이런 공격은 결국 플라톤으로 하여금 작가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철학자의 입장에서 본 작가는 사실을 왜곡시키는 사회의 위험인물이라는 논리가 제기되었다.
예술은 모방의 모방이라는 논리가 플라톤으로부터 비롯했는데 이면에는 아리스토파네스를 염두에 둔 공격적인 면도 있었다.

우리는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에 관해 알게 되는데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너무 많이 포함시켰으므로 그의 저서를 읽으면서 어디서 어디까지가 소크라테스의 생각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플라톤의 생각인지 분명하게 선을 긋기가 어렵다.
플라톤은 철학자이면서 글쓰기 솜씨가 빼어나 작가의 기질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문장의 매우 수려하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활약할 때 어린이였으므로 그가 직접 소크라테스로부터 들은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었지만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기록한 저서를 보면 마치 옆에서 직접 듣고 쓴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상상력과 문장력이 여느 소설가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그가 역사가historian로서는 적당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그의 저서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소설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매우 흥미로운 성격의 인물이라서 플라톤이 자신의 취향대로 소크라테스의 성격을 만들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에 관해 말할 때면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는'이라고 해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된다.
또는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보면'이라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플라톤의 저서들 중 소크라테스에 관한 가장 역사적 기술은 <변명 Apology>인데 소크라테스가 판사들 앞에서 자신을 변명하는 재판소 기록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 재판이 있은 지 여러 해 후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지 여러 해 후에 플라톤이 기억을 더듬어서 쓴 것으로 이 또한 얼마만큼 사실에 입각해서 쓴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역사란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록되기 때문에 이런 의미에서 보면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역사를 기록한 사람의 의도를 함께 이해하면서 역사를 바라볼 때 역사의 참모습을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현인이 어디엔가 있을 거라고 믿고 찾았다.
결국 그는 현인을 찾지 못했다.
그 자신이 바로 현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현인이었으므로 자신감을 갖고 젊은이들을 계몽시키려고 했다.
젊은이들이 자각하게 되고 말이 많아지자 기성세대들은 젊은 세대들의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따지려고 들자 그 원인이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서 비롯함을 알게 되었다.

아테네의 유일한 현인 소크라테스를 법정에 세워 사형을 주장한 사람은 아니터스Anytus이다.
민주주의 신봉자 정치가로 알려졌다.
바극시인 멜레터스Meletus가 아니터스에 관해 기록한 것이 있어 그에 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젊고 유명인은 아니며 여위어보이는 머리를 했고 빈약한 수염에 메부리코를 했다."

이 자가 감히 아테네의 현인을 기소한 것이다.
그는 기소 이유로 소크라테스는 악을 행하는 자evil-doer로서 호기심이 많으며 땅속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찾아나섰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악한 것들을 생각해냈고 그것들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쳤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포함한 제자들이 마련해준 돈 30minae로 벌금을 내려고 했지만 법원은 그 돈이 너무 적다고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수결로 사형을 확정했다.
이는 그가 예고한 것이기도 했다.

겉으로 나타난 사형에 대한 기소는 그가 국가가 숭배하는 신들을 숭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신들을 소개했고 이런 신들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젊은이들을 부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신성불경죄가 가장 간단하게 그를 사형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적용한 것이고 실제로는 그가 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제비뽑기식이라서 얼간이들도 정치에 참여하게 되므로 이를 소크라테스가 반대한 것이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무식한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정치가 아니다.
다수가 원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철학자가 정치를 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정치가가 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은 자가 국민의 추대를 받아 정치를 하는 체제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런 정치를 주장한 것이다.
자연히 귀족정치를 주장한 셈이고 민주주의 신봉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반체제인사인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반국가적 정치범인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