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훌륭했던 소피스트 
 

기원전 5세기 후반 아테네에는 회의주의가 만연했다.
이는 이성주의가 두드러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
아테네에서는 소피스트sophist들의 활약이 현저했는데 이들 중 가장 훌륭했던 소피스트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
소피스트를 오늘날로 말하면 교수professor에 해당한다.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소피스트들은 지식을 팔아서 생활했다.
당시에는 학교가 없었으므로 소피스트들은 부유한 자제들의 가정교사로 일했다.
아테네와 주변의 도시국가들에는 민주주의가 발달했으므로 귀족들이 부를 축적했고 그들은 자녀들의 교육에 돈을 쓰며 한가로운 생활을 즐겼다.

당시 민주주의는 노예제도에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귀족들은 노예를 부려 다욱 부자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부자들은 부도덕했으며 자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고 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에는 여자와 노예의 인권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오늘날 어느 나라의 민주주의보다도 더욱 민주화되어 있었다.
더욱 민주화가 되어 있었단 말은 당시에는 제비뽑기가 대유행이었다.

판사들과 대부분의 관리들은 제비뽑기로 선출되었으며 짧은 기간동안만 근무했고 그들은 오늘날처럼 전문인력이 아니라 보통시민들로서 영국과 미국의 배심원들jurymen 같았다.
재판에는 많은 수의 판사들이 참여했고 피고와 원고, 또는 기소자와 피기소자들은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고 재판정에서 스스로 변호했다.
자신을 잘 변호할 줄 아느냐에 따라서 판결이 정해진다.
변명문은 전문가에게 위탁해서 작성하는데 이런 일을 소피스트들이 했다.
오늘날 변호사에 해당한다.
프로타고라스는 첫 번재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도록 자신을 변호하는 방법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쳤으며
사건을 의뢰받을 경우 패소하면 돈을 안 받았고 승소하면 돈을 청구했다.

프로타고라스는 기원전 500년경 데모크리터스의 고향인 압데라Abdera에서 태어났고 아테네를 두 번 방문했는데 그의 두 번째 방문은 기원전 432년 이전에 있었다.
그는 불경죄로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사실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당시로서는 불경스러운 말을 했는데
저서 <신들에 관해 On the God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들에 관해 나는 그들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며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 수 없다.

그의 유명한 말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 of things that are that they are, and of things that are not that they are not.

이 말은 인간 각자 만물의 척도이며
각자 견해를 달리 할 경우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된다.
홍길동도 만물의 척도이지만 임꺽정도 만물의 척도이기 때문에 만약 홍길동과 임꺽정이 서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싸울 경우 두 사람 모두 만물의 척도라서 어느 누구도 그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라서 프로타고라스의 말은 본질적으로 회의론주의이다.
옳고 그른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최대한으로 프로타고라스의 회의주의를 실용적으로 적용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홍길동의 의견과 임꺽정의 의견을 비교할 때 어느 누구의 의견이 더 진실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으나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비해서 낫다라고는 말할 수 있다.
낫다란 말은 누구의 의견이 더 실용적인지를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여러 도시를 순례하면서 강의를 하고 돈을 받았는데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이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것을 옳지 않게 보았다.
오늘날 교수가 돈을 받지 않고 가르친다고 부덕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지만 당시 아테네의 정서로 볼 때 지식을 파는 행위는 부덕한 일이었다.
소피스트들은 논쟁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오늘날의 변호사처럼 어떤 반박에도 방어할 수 있는 논리를 제시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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