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파르메니더스Parmenides의 형이상학은 "저기에 공허가 있다"고 할 때 공허가 무nothing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공허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물론자들은 이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고 다만 운동을 경험할 수 있으며 운동이 있다면 거기에는 공허가 있는 것이라는 정도로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한 논리적 해결이 있으려면 물질matter과 공간space의 개념에 대한 정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리학 Physic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공허가 존재한다는 이론은 장소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사람들은 공허를 물질이 빼앗긴 장소인양 정의한다.

뉴턴Newton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절대공간 absolute space'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운동을 상대적인 것과 절대적인 것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하늘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회전한다"는 말이나
"지구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돈다"는 주장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같은 것을 다르게 말하는 것이다.
"영자는 순자의 언니이다"라는 말과
"순자는 영자의 동생이다"라는 말은 같은 사실을 다르게 말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파르메니더스의 공허에 대한 주장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데카르트Descartes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견해를 갖고 있었으므로 물질의 본질essence을 확장extension으로 이해했으며 물질이 모든 곳에 있다고 보았다.
그에게 빈 공간smpty space은 행복한 사람이 없는 행복으로 이해되었다.
라이프니츠Leibniz 역시 충만plenum을 믿었지만 공간을 단지 상관관계의 체계system로 인식했다.
이런 문제가 미결로 오래 남아있다가 아인슈타인의 등장으로 해결되었는데 아인슈타인은 라이프니츠의 오른손을 높이 들어주며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의미에서 물질은 원지이지만 참공간(혹은 절대공간)이 존재한다고는 보지 않았고 물질이 없는 곳에는 어떤 것이 있는데 그것은 광선light-waves이라고 했다.
그에게 물질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함께 하는 사건의 방법일 뿐이었다.
어떤 사건은 그룹의 물질로 나타나지만 어떤 사건은 광선으로 나타나고 물질로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사건은 잠시동안만 일어난다.

최근의 물리학자들은 헤라클리터스Heraclitus의 편에 서면서 파르메니더스의 이론을 부정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출현하기 전까지만 해도, 뉴턴의 물리학이 존재할 때까지만 해도 파르메니더스의 형이상학적 이론이 유효하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뉴턴은 공간을 물질로 보았지만 오늘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며
고대 유물론자들 루니푸스Leucippus와 데모크리터스Democritus의 이론도 아니고
데카르트의 견해도 아니며
라이프니츠가 말한 상관관계의 체계일 뿐이다.

아인슈타인은 거리란 사건들의 관계이지 물질들의 관계는 아니라면서 공간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소요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예로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별은 죽은 별일 수도 있다.
우리는 오래 전에 존재한 별을 지금에서야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별을 보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
최근의 물리학자들은 거리에는 action이 없다고 본다.
이런 견해들은 형이상학 혹은 논리적인 결과가 아니라 오로지 경헙에 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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