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가 문화의 요람이 된 것은
아테네가 문화의 요람이 된 것은 페르시아와 두 차례 전쟁을 치룰 때였다.
기원전 490년과 480-79년이었다.
그 이전에는 이탈리아와 시실리 남쪽에 있는 도시 아이오니아Ionia에서 주로 인물들이 배출되었다.
마라톤Marathon 전쟁(기원전 490년)에서 승리하고 그리스의 함대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를 뒤를 이은 그의 아들 세르세스Xerxes를 격파한(기원전 480년) 후부터 아테네에는 황금기가 시작되었다.
섬에 거주하던 아이오니아인과 소아시아의 일부 그리스인이 페르시아를 보복하자 페르시아군은 그리스 본토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시기에 스파르타인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에 급급했다.
아테네는 페르시아를 칠 때 함정을 제공했으므로 전쟁 후 함정들을 상선으로 사용하면서 교역에 전력했다.
페리클레스Pericles는 지혜가 있는 왕으로 기원전 430년까지 30년 동안 선정을 베풀었으며 부를 아테네 도시 전체를 장식하는 데 사용했다.
이 30년은 그리스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가 되었다.
세르세스가 아테네를 점령했을 때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 있는 사원들에 불을 질렀는데 페리클레스가 재건했으며 현제 파손된 대로 남아있는 웅장한 파르테논Parthenon 신전과 그 밖의 사원들은 그가 건축한 것들이다.
페리클레스는 조각가 파이디아스Pheidias를 고용하여 남신과 여신들을 만들게 했으며 아테네는 그리스인들이 사는 곳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심이 되었다.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헤로도토스Herodotus는 소아시아 사람이지만 아테네에 거주하고 있었고 아테네인의 입장에서 본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기록으로 남겼다.
기원전 430년 당시 아테네의 시민과 노예는 모두 23만 명이었다.
아테네가 배출한 철학자들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시절을 페리클레스 시대에 보냈고 플라톤은 조금 후의 사람이다.
페리클레스가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를 아테네로 불러들였는데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그로부터 배웠다고 했다.
플라톤은 귀족출신이었다.
페리클레스가 사망할 때(기원전 430년)까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권력을 가진 귀족 중심이었다.
스파르타는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아테네를 침공했으며 아테네는 결국 전쟁에서 패했다.
그러나 플라톤이 아테네에 상경한 아리스토텔레스를 제자로 삼으면서 두 사람이 아테네를 철학의 도시로 만들었다.
서양의 사상은 이 두 사람으로부터 거대한 두 줄기 강물로 흐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