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섭은 감각적·심리적·정서적으로

고유섭은 조선 건축물이 수학적으로 산술되게 지어지지 않고 멋을 부렸다면서 멋이란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다양성의 발휘” 혹은 “다양성·다채성多彩性으로의 기교적奇巧的 발작”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 멋은 “무중심성, 무통일성, 허랑성虛浪性, 부허성浮虛性이 많은 것이어서 일종의 농조弄調는 있을지언정 진실된 맛이 적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얄상궂고 천박하고 교혜로운 점”이 없는 소박성을 전통의 특성을 꼽으면서 이조 백자에서는 구수한 맛이 풍겨난다면서 ‘조선 미술 문화의 몇 낱 성격’에서 야나기의 ‘비애의 미’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폈다.

구수하다는 것은 순박, 순후한 데서 오는 큰 맛으로 예리, 규각, 표열 등에서는 오지 않는 맛이다.
그것은 심도에 있어 입체적으로 온 축 있는 맛이며 속도에 있어 질속과 반대되는 완만한 데서 오는 맛이다.
따라서 얄상궂고 천박하고 교혜로운 점은 없다. 이러한 맛은 신라의 모든 미술품에서 현저히 느낄 수 있는 맛이나 그러나 조선 미술 전반에서 느끼는 맛이다.
이것이 미술적 승화를 못 얻었을 때 그것은 텁텁하고, 무디고, 어리석고, 지더리고, 경계 흐리고, 심하면 체면 없고 뱃심 검을 꼴이 된다.
이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고수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적은 것으로의 응결된 감정이니 예컨대 이조 백자의 색채 같은 데서 그 구체적 예를 볼 수 있다.
외면적으로 일견 단순한 백일색에 불과하지만 여러 가지 요소의 안으로의 응집 빙결된 특색이니 저 구수한 맛이란 것이 내외 없이 혼연한 풍미를 이루고 있는 것임에 대하여 이것은 안으로 응집된 풍미이다.

고유섭은 온아하고 단아한 점이 한국 미술품이 지니는 특성으로 꼽으며 같은 글에서 적었다.
“온아, 단아는 다시 색채적 일면에 있어 다채적이어서는 아니 된다.
즉 멋쟁이여서는 아니 된다.
그것은 질박, 담소, 무기교의 기교라야 한다.
… 색채적으로 조선은 다른 모든 나라에 비하여 매우 단색적이다.
그 곳에 순박성이 보이지만 이것이 일전하여 적조미의 일면으로 나온다.
감각적으로 단채적이나 또한 명랑한 것은 담소한 것인데 그것은 정서적으로 적료에 치우치기 쉬운 것이다.
적료의 예술화된 것을 필자는 일찍부터 적조미 또는 적미라는 술어로서 형용하였는데 이것은 순전히 감각적이요 심리적이요 정서적인 것으로서 조선 미술의 커다란 성격의 하나이다.”

고유섭은 감각적·심리적·정서적으로 절로 우러나는 은은한 맛이 조선 고유의 미라고 주장했다.
고유섭은 서른아홉 살에 타계했고 그의 사상을 물려받은 제자 최순우(1916~84)는 간소미簡素美를 고유의 미로 꼽았다.
그는 1963년에 발표한 글 <우리의 미술>에서 조선 백자를 예로 들어 간소미를 기술했다.
“의젓하기도 하고 어리숭하기도 하면서 있는 대로의 양심을 털어놓은 것, 선의와 치기와 소박한 천정天定의 아름다움, 그리고 못생기게 둥글고 솔직하고 정다운, 또 따뜻하고도 희기만한 빛, 여기에는 흰 옷 입은 한국 백성들의 핏줄이 면면이 이어져 있다.
말하자면 방순芳醇한 진국 약주 맛일 수도 있고, 털털한 막걸리 맛일 수도 있는 것, 이것이 조선 자기의 세계이며, 조선 항아리의 예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