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섭
조선인으로 조선 미의 특징을 처음 언급한 사람은 우현 고유섭이다.
그는 1930년대 초부터 조선 미술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일본 학자들의 조선 미술에 관한 기술들을 취사선택하면서 조선인의 창의성과 조선 미술품에 나타난 고유성을 강조했다.
고유섭이 에카르트를 구체적으로 섭렵한 자료는 없지만, 그는 1935년경에 에카르트를 언급했다.
“… 민족적 감정을 이용한 비학구적 서술이라는 평을 받으나마 에카르트 씨의 『조선 미술사』가 나오게 된 것은 그 훼예毁譽가 여하튼지 간에 감사할 만한 현상이라 하겠다.
도리어 나의 문제의 중심은 … 뵐플린, 리글 방법론적 고민에 있다 하겠다.”
고유섭은 에카르트의 저술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세평에 빗대어 그의 업적을 소극적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그가 에카르트의 저서를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에카르트가 조선 미술의 특징으로 꼽은 단순성, 자연감, 정적 등이 고유섭의 적미, 담소, 순박, 자연에 순응하는 무관심성, 소광, 세부에 있어 치밀하지 않으나 세부에 있어 치밀하지 않은 점이 더 큰 전체에로 포용되어 그곳에 구수한 큰 맛을 이루게 되는 확실히 예술적 특징의 하나 등의 동류개념으로 나타났다.
야나기가 1942년에 쓴 『공예문화』 중 공예의 본질로 단순성에 관한 대목이 나오는데, 야나기는 외국 책을 한 권도 참조하지 않고 독창적으로 쓴 것이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흥미롭게도 야나기의 지적이 에카르트와 유사하다. 야나기는 『공예문화』에 적었다.
“‘수수함’의 아름다움도 필경은 이 단순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단순이란 한낱 단조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질없는 요소를 모조리 생략하고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만으로 구성된 결정을 의미한다.
본질적인 것이 집약된 모습이다.
그것은 복잡을 다 섭취하고서 어떤 궁극에 다다른 단순성이다.
… 단순은 단일이 아니라 포괄이다.
단순보다 더 많은 것을 포괄하는 용기는 없다.”
단순성은 고유섭과 야나기의 공통된 독창적인 발견이겠지만 10여 년 전에 에카르트가 먼저 이를 지적했다는 것은 선구적인 업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고유섭은 1931년 발표한 논문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의 고찰>에서 “중국·조선·일본의 예술적 구별을 야나기 무네요시는 그의 저서 『조선과 그 예술』에서 형과 선과 색으로 그 특징을 설명했으나 그것을 실제적으로 예술품에 적용해 국민적·국가적 소유로 돌리기에는 너무나 시적 구별임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1941년에 발표한 논문 <조선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에서는 조선 미술이 정제성에 치중하지 않고 왜곡된 파형跛形을 많이 이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형태가 형태로서의 완전형을 갖지 않고 음악적 율동성을 띠게 된 것이니, 조선의 예술이 선적線的이라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정의는 이 뜻에서 시인된다 하겠다”고 기술했다.
그는 야나기가 조선 미의 특징이 선에 있다고 한 것에는 동감을 표하면서도 ‘비애의 미’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고유섭은 1940년 7월 26, 27일자 『조선일보』에 ‘조선 미술 문화의 몇 낱 성격’이란 제목의 글에서 조선 미의 특징으로 상상력과 구성력을 꼽았다.
“제1은 상상력, 구성력의 풍부를 들 수 있다.
… 이 상상력, 구성력이란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어느 민족의 예술 문화이고 간에 그것이 예술인 이상 반드시 근본적 활동 기능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지만 필자가 이것을 특히 조선 문화에 있어서의 특색으로 드는 것은 일본, 중국 등의 조형 미술과 비교하여 그 구규矩規가 산술적으로 완전 제할되지 않는 일면을 말한 것이다.
구체적 예를 들려면 일본, 중국의 건축 각부의 세부 비례가 완수로써 제할되지만 조선의 그것은 제할이 잘 되지 아니하는 일면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