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미술협회
히요시 마모루, 아사카와 노리타카, 토다 카즈오, 이시구로 요시카즈 등은 일본인을 위한 학교에서 도화를 가르쳤지만 조선인 학교에서 조선인 학생을 가르친 일본인 도화교사도 있었다.
경성 제이고등보통학교에서는 야마다 신이치山田新一(1899~1991)와 사토 쿠니오가 도화를 가르쳤으며, 이 학교 교장 타카하시 하마요시는 영국에서 유학한 영문학자로 미술에 관심이 많아 오랫동안 선전에 관여했다.
사토 쿠니오와 야마다 신이치는 동경미술학교 동기이자 바라몬샤의 동인이었다.
사토 쿠니오는 1942년 9월 병으로 쓰러질 때까지 제이고보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에게 피카소를 비롯한 입체주의, 야수주의 등을 가르쳤다.
그는 학생들의 작품을 모아 제이고보전이란 명칭으로 전람회를 개최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비롯하여 히요시 마모루, 이시구로 요시카즈, 마에다 긴시치, 이토 아키우네, 타다 케이조 등 선전 작가들의 찬조 작품을 받아 함께 전시했다.
제이고보 출신으로 조선인 화가 중 사토 쿠니오의 제자는 유영국, 장욱진, 이대원, 권옥연, 김장옥, 임완규(1918~2003), 심형구 등이 있다.
이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구이회九二會를 만들었다.
임완규는 1943년 9월에 제국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그가 1943년 신미술가협회전에 출품한 작품에 관해 정현웅은 1943년 9월호 『조광』에 기고한 글에서 적었다.
“임완규 씨 <추秋> <토방土房> - 기대할 만한 분이다. 화면 전체를 통한 악센트가 일단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떨지.”
임완규는 해방 후 국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1967~89년 홍익대 교수 및 회화과장을 지냈다.
1974년 제6회 대한민국예술대상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많은 일본인 남녀 미술학교 출신이 조선에서 도화교사로 근무했으며, 정식 교직 외에도 일반인을 위한 특별 강연이나 대학 강사를 맡은 화가들도 있었고, 개인 화숙을 중심으로 소그룹 형태의 미술연구 단체를 결성하여 활발하게 활동했다.
야마모토 바아카이가 1911년에 양화속습회를 결성한 이후 1915년에는 아마쿠사 신라이와 시미즈 토운, 타카키 하이스이가 조선미술협회를 창립하여 전람회를 개최했다.
조선미술협회는 내무장관 우사미 카츠오宇佐美勝夫를 회장으로 쿠도 소헤이, 김곡충을 간부로 두고 운영되었지만 오래 가지 않아 중심 인물의 교체로 해체되었다.
회원들은 다시 선우회仙友會를 조직하고 매월 작품감상과 휘호회揮毫會를 열었지만 이 역시 오래 가지는 못했다.
다양한 미술단체가 결성된 배경에는 선전의 개최로 미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진 것과 더불어 조선에 이주한 일본인들의 생활이 안정되어 한층 미술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점을 꼽을 수 있다.
선전의 특선 작가들이 운영한 조선미술협회는 1925년 히요시 마모루, 토다 카츠오, 야마다 신이치를 중심으로 결성되었고 고문 겸 후원자로 총독부 학무국장 이진호와 식산은행의 와다 이치로를 두고 그 집의 응접실을 회원들의 아틀리에로 사용했다.
그들의 가장 주된 활동은 일반인 대상의 회화강습이었으며 학습과정은 목탄 사생부, 인체부, 유화부, 수채부로 이루어졌다.
조선미술협회에서 야마다 신이치와 토다 카츠오로부터 지도받은 학생 중에는 선전의 여류화가가 된 마츠자키 키미와 오오츠카 요시가 있다.
학생들 중에는 일본인 외에 조선인과 중국인도 있었고, 조선인 학생 중에는 여류화가 백남순과 후에 동경미술학교로 유학을 가서 후지시마 타케지(1867~43)로부터 수학한 이마동이 있다.
조선미술협회는 세 차례의 전람회를 연 후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