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일본 화가들
조선에 일본인 화가들이 이주해 오게 된 것은 일본 정부의 제국주의 식민정책이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군사대국으로 급부상하여 1895년과 1910년에 대만과 조선을 합방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침략전쟁과 식민지 개척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 정부는 각 식민지에 통치기관인 총독부를 두고 본국으로부터 많은 군인과 민간인을 이주시켜 원활함 식민지 경영을 도모했다.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의 수는 1889년 약 5천 명이었던 것이 합방 이후 1916년에는 32만여 명으로 급증한 것을 보면 식민지 경영을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합방 전 조선에 온 일본인 화가는 대부분 종군화가들이었다.
이들은 조선의 이국적 풍경과 풍속을 그려 일본으로 가져갔다.
1912년 순종의 초상을 그린 하쿠바카이白馬會의 안도 나카타로를 비롯하여 7명의 서양화가들이 조선 체류 중에 개인전을 열었고, 후지시마 타케지는 일본으로 돌아간 후 조선에서 스케치한 것과 함께 ‘조선 관광 소감’이란 글을 발표했다.
러일전쟁이 끝난 후부터 조선으로 이주하는 일본인 화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1907년에 23명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동경미술학교 조교수를 지낸 아마쿠사 신라이天草神來(?~1917)가 있었고 그는 1902년경부터 수차례나 조선을 방문하여 일본 화단에서 조선통으로 알려졌다.
아마쿠사 신라이는 오카쿠라 덴신 문하의 사람으로 일본 문화원의 동인 가운데서도 요코야마 타이칸에 버금가는 제자였다.
그는 1907년 경성에 정착한 후 꾸준한 활동으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조선인의 후원을 받았으며 안중식, 조석진, 김응원을 비롯한 조선인 화가들과 교류했다.
일본인 화가의 방문과 이주가 잦아지면서 조선 내에서의 그들의 전람회도 빈번하게 열렸다.
아마쿠사 신라이의 알선으로 1905년 동경미술학교의 일본화 관계자들이 연 단청회전丹靑會展은 조선 내 일본인에게 작품을 팔기 위해 마련한 것이지만 예상 외로 많은 작품이 팔리고 조선인들의 관심을 받게 되자 부산 및 대만에까지 순회전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회원 외의 작품도 모아 부산, 경성, 평양, 진남포, 안동현, 대만 등지를 도는 순회전을 열기도 했다.
일본의 『동경미술학교 교우회 월보』에 순회전에 대한 보도가 청나라와 조선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끌어 성황을 이루었다고 전해진 후 더욱 많은 일본인 화가들이 조선을 찾게 되었다.
합방 후 조선에서 열린 일본인 화가들의 전람회는 관의 후원으로 열린 정치적 성격이 짙었다.
조선에 체류하는 일본인에게 작품을 판매하는 목적 외에도 일본의 훌륭한 근대미술을 조선에 알리는 제국주의 문화 지배의 목적도 있었다.
1915년 조선 통치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총독부가 주최한 시정 5년 공진회도 이런 의도로 개최된 전람회였다.
시정 5년 공진회에는 총독부가 그동안 모은 각 분야의 수집품이 소개되었다.
미술부분에서는 일본 대가들의 작품과 조선 거주 일본인과 조선인의 작품을 소개했는데, 심사위원들은 일본인이었다.
그들은 대정 5년(1916)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시정 5년 기념 조선물산 공진 보고서』에 기고한 심사평에서 “조선 미술계가 피폐하여 내지식內地式(일본식)을 모방하고 있으며 조선 미술의 특징을 잃어버린 지금의 상황을 구제할 방도가 요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폐한 미술계를 구제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조선 미술이 일본인에게 어떻게 보여졌으며 그들의 식민지 화단에 대한 시각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