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Herodotus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헤로도토스Herodotus에 의하면 플라톤이 본 스파르타의 이상국가는 사뭇 다르다.
당시에 살았던 헤로도토스는 자신은 뇌물을 안 받은 스파르타인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스파르타 여인은 정숙하다고 알려졌지만 여러 차례에 걸쳐 왕손들은 그들의 어머니의 남편 아들들이 아니었다.
스파르타인들은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고 플루타르크는 <영웅전>에서 찬양했지만 플라타애아Plataea 전쟁을 승리로 이끈 왕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나중에 매국노가 되고 말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가 몰락한 후에 살았던 사람으로 그는 <정치학 Politics>에서 스파르타의 헌법을 조목조목 비판했으며 다섯 명의 민선장관들ephors은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었더라도 아주 가난했고 그래서 뇌물을 잘 받았다고 적었다.
민선장관의 권력이 너무 강했으므로 그들은 두 왕들조차 법정에 세울 수 있었고 헌법은 그래서 민주주의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민선장관들이 부패했다고 적었다.
그가 이런 글을 쓸 때만 해도 스파르트가 부패해질 때였으며 그는 스파르타의 부조리를 일일히 열거했는데 아주 분명했고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전해주는 스파르타보다는 플루타르크Plutarch가 신화적으로 이상화한 스파르타를 더욱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플라톤도 저서 <공화국 Republic>에서 스파르타를 이상국가로 묘사했으므로 더욱 더 사람들은 스파르타를 훌륭한 나라였다고 믿는다.
신화적인 스파르타는 주로 플루타르크에 의해서 주로 알려졌으며 그에게는 스파르타는 매우 낭만적인 국가였다.
그가 전하는 말을 역사학자들은 조심스럽게 다뤄야겠지만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플루타르크의 증언은 매우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