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1840~1917)
프랑스 낭만주의의 가장 유명한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은 1875년 이탈리아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고 앙트완느 부르델Emile-Antoine Bourdelle(1861~1929)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켈란젤로가 자신을 아카데미즘에서 해방시켜주었다고 밝혔다.
1878년 최초의 중요한 작품 <청동 시대 L’Age d’Airain>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모델링이 실재와 똑같아서 물의를 일으켰으며, 로댕은 살아 있는 모델의 몸에 틀을 떠서 만든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 작품의 교묘한 사실주의와 움직임에 대한 그의 애정은 이어지는 <걷는 남자 Walking Man>와 <설교하는 세례자 요한 St. Jean-Baptiste Prechant>을 위한 습작에서도 나타난다.
로댕은 1880년 정부의 의뢰로 장식미술관에 거대한 <지옥의 문 Gates of Hell>을 제작하기 시작했지만 20년 후에도 완성하지 못했다.
이 작품이 청동을 뜨여진 것은 그가 타계한 후였다.
<지옥의 문>은 기베르티가 피렌체 세례당에 세운 <천국의 문 Gates of Paradise>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 인물상과 군상은 시스티나 예배당 프레스코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Last Judgement>, 단테의 『신곡 La Divina Commedia』 중 ‘지옥편’을 위한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가장 유명한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e(1832~83)의 삽화(1861), 윌리엄 블레이크의 동파화 등을 연상시킨다.
200명에 이르는 인물상 중 많은 작품이 그의 가장 유명한 단독 조각상의 기초가 되었는데, 거기에는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 <키스 The Kiss> 등이 포함된다.
로댕은 성격과 동작의 표현과 모델링을 선호한 낭만주의적인 조각가였다.
만년의 많은 작품은 춤에서 영감을 받았다.
로댕의 작품에 덧붙여진 문학적·상징적인 의미는 20세기를 지배한 순수 조각 개념에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낭만주의적인 문학적 특징을 지니는 데도 그의 작품은 삼차원의 공간에서 구도의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했다는 점에서는 동시대의 조류에 어느 정도 동참하고 있다.
로댕은 차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그의 조수 중에는 부르델, 샤를 데스피오Charles Despiau(1874~1946), 아리스티드 마욜Aristide Maillol(1861~1944) 등이 있었다.
로댕의 미학은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다.
“형形의 깊어감을 파악하여 주요한 면을 명확히 나타내고, 너를 향해 돌출된 것으로 형을 상상하라.
모든 생명은 중심으로부터 샘솟아 안에서 바깥으로 퍼져간다.
소묘에서는 튀어나온 것과 들어간 것을 관찰하라.
외곽선이 아닌 오목과 볼록이 윤곽을 결정하며, 중요한 것은 감동하고 사랑하며 기대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
예술가이기 이전에 인간이어라!”
로댕은 입체로 조각상을 파악하고 특히 표면의 요철을 정밀하게 형성해 감으로써 작품이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진실이야말로 미인이다”라고 했는데, 정신적인 의미로서의 내적 진실과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는 촉각적인 진실을 의미한다.
이 점을 파악한 20세기 조각의 아버지 브랑쿠시는 “인간이 조각의 척도가 된 것은 로댕의 덕택이다”라고 했다.
로댕의 조각 미학을 전승한 사람이 아리스티드 마이욜과 앙트완느 부르델이다.
고대 그리스 조각으로부터 미켈란젤로를 통해 로댕까지 이어진 조각의 기본 개념은 진실을 미로서 이상화하는 것이었다.
로댕은 고전 조각과 현대 조각을 잇는 교량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