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느웨Nineveh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일대의 티그리스 강 유역에 위치했던 니느웨는 현재 이라크에 속해 있다.
니느웨의 유적지로 두 개의 커다란 쿠운지크Quyunjiq(많은 양 무리의 뜻) 언덕과 네비 유누스Nebi Yunus(선지자 요나의 뜻) 언덕이 있고 성 주위에는 약 13km에 이르는 정방형의 성벽이 에워싸여 있다.
이 면적은 매우 커서 220만 평에 달한다.
요나서 3장 2절에 니느웨 성을 한 번 도는데 사흘이 걸린다고 했으니 그만큼 큰 것으로 외국인에게 알려졌다.
창세기에 니느웨가 처음 언급되었는데 대홍수 이후 노아의 아들 함이 구스를 낳고 구스가 니므롯이란 영걸을 낳았다.
"니므릇은 세상에 처음 나타난 장사였다.
그는 야훼께서 알아 주시는 힘센 사냥꾼이었다.
그래서 '야훼께서도 알아 주시는 니므롯 같은 힘센 사냥꾼'이라는 속담까지 생겼다.
그의 나라는 시날 지방인 바벨과 에렉과 아깟과 갈네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그 지방을 떠나 아시리아로 나와서 니느웨와 르호봇성과 가라를 세우고, 니느웨와 갈라 사이에 레센이라는 아주 큰 성을 세웠다."(창세기 10:8~12)
니느웨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세워진 장구한 역사를 가진 오래된 마을이며 부유한 성읍이었다.
니느웨 성벽의 높이는 30m에 달했으며 성벽 위에는 여섯 대의 쌍두마차가 동시에 달릴 수 있는 길과 성 주위에 18m 깊이의 연못이 둘러쳐져 있어 적이 감히 침범하기 어려운 낭공불락의 도성이었다.
성벽의 내부에는 병영과 무기고 그리고 궁량창고 등이 있었다.
열왕기하 19:35~37과 이사야 37:36~38을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이 18만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을 치러왔다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룻밤에 몰살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헤립은 간신히 목숨을 보존하여 귀국해서 니느웨로 돌아갔고 그들이 숭배하는 신 니스록의 묘에 경배할 때 그의 아들들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피살되었다.
니스록은 메소포타미아 종교 문헌에 언급되지 않는 것을 보면 주요 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니스록은 앗수르의 국가 신 앗수르Ashur의 이름을 가리키는 듯하다.
일부 학자는 니스록 신을 누스쿠 신의 또 다른 명칭이거나 독수리 모양의 군기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요나서에 의하면 니느웨의 상업이 번창하여 국민의 생활이 윤택해지자 범죄가 극심해져서 하나님의 멸망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하나님이 요나를 그곳으로 보내 멸망을 경고하자 왕 이하 온 국민이 회개함으로써 일단 멸망을 보류했다.(요나 3:4~10)
앗수르는 기원전 606년에 바빌론에게 패망되었다.
니느웨에 관해 특기할 만한 것은 니느웨 도서관으로 1845~50년에 발굴되었다.
도서관의 규모가 컸으며 점토로 제작된 서판이 주로 발굴되었는데 설형문자 비문이 발굴되었으며 그 내역으로는 언어학, 천문학, 점성술, 종교적 문헌, 법전, 과학서적과 기구, 문학과 예술, 역사서와 연대표, 상업서, 각종 서간 등의 서판이 2만 6천 개나 있었다.
요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상징이었다.
근래 발굴된 250~275년 소아시아 서쪽 지역에서 제작된 조그만 대리석 조각에 요나의 모습이 있다.
조롱박 덩쿨 아래 비스듬히 누운 요나는 그리스인의 형상으로 제작되었는데 그리스인이 본다면 자신들의 신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할 것이다.
요나는 그리스 신화에서 달 여신의 사랑받는 목동 엔디미온Endymion의 모습에서 변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