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미륵보살반가상>은 한국에서
일본 경도 광륭사에 있는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은 한국에서 간 것이다.
섹켈D. Seckel은 『극동 미술 입문 Einfubrung in die Kunst Ostasiens』(1960)에서 이 점을 시사했다.
이 초기의 일본 작품들이 한국의 양식을 어느 정도 변형했는지, 또는 그것들이 한국에서 수입된 것인지, 또는 일본에서 한국(또는 중국)의 예술가들이 만들었는지, 또는 한국(또는 중국) 예술가들에게 배운 일본인 제자들이 직접 제작했는지는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난해한 문제로 남아 있고 또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까닭은 첫째, 반가상이 극동지역 전역에 보편화되어 있다는 사실과 둘째, 중국과 한국의 모든 원상이 거의 분실되어 실제적으로 비교해 해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반가상이 한국에서 왔다는 것은 많은 연구가들의 의견이다.
미륵은 범어로 마이트레야Maitreya이며 무능승無能勝을 뜻하는 미래불이다.
‘원근이 무량하여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적적하고 쓸쓸한 것이 본래의 자연’이라고 표현한다.
반가상, 석굴암 등 빼어난 조각품이 주변에 있었지만 일제시기에서 이를 우리나라 미술의 고유한 원형으로 보려는 사람이 없었다.
고유섭은 한국 불상에는 ‘어른 같은 아이’가 많다면서 한국인의 “질박質朴, 둔후鈍厚, 순진純眞이 형태의 피조跛調라는 것을 통하여 ‘적요한 유머’에 이르러 ‘어른 같은 아이’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했다.
소박성은 그에게 있어서 ‘구수한 맛’으로 “얄성궂고 천박하고 경거망동하는 교혜巧慧로움이 아닌 것”을 뜻한다.
중국 미술에는 웅장한 건실미가 있지만 구수한 맛이 없고 한국의 미술은 양적으로는 작으나 구수하게 큰 맛이 있다는 것이다.
조요한은 고유섭의 지적에 동조하면서 일본의 일광묘日光廟나 천초관음당淺草觀音堂은 공중에 뜬 신기루와 같지만, 한국 건축은 어느 것을 보더라도 땅 속에 깊이 자리 잡고 반석처럼 서 있고, 중국의 불상은 불격佛格을 과시하려는 천상의 얼굴이나 <서산 마애삼존불>과 서산 군위의 <삼존석불>은 백제인과 신라인이 향토적인 얼굴이라고 했는데 그는 텐느의 자연환경설을 적용한 것이다.
고유섭의 우리 미술의 소박성에 동조한 조요한은 『예술철학』에서 <군수리 석조여래좌상>과 <석불두 石佛頭>는 각각 백제와 신라의 것으로 둘 다 청정무구한 동안童顔으로 한국인의 소박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동시에 집착이 없는 불교 정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소박하다는 것은 인위적이지 않다는 뜻이며 자연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김원룡은 조선의 목공품을 예로 들어 인공의 선과 면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소박성을 유지했음을 『한국 미술사』에서 지적했으며, 이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