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섭
길진섭(1907~75)은 1907년 평양에서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길선주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으로 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1932년에 졸업하고 귀국한 후 서울에서 활동했다.
그는 총독부가 만든 선전에 출품하기를 거부하고 민족적 성격의 협전에만 출품했으며 목일회牧日會와 그 후신인 목시회 동인전에도 참여했다.
1936년에는 동경의 일본 문부성 미술전람회에 <모자 母子>를 출품하여 입선했고 1940년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그 때 윤희순은 『매일신보』에 “현대적 표현감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고 적었다.
해방 후 그는 서울대 예술대학 미술학부(뒤에 미술대학으로 승격) 창설 때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조선조형예술동맹 부위원장, 조선미술동맹 서울지부 위원장을 지냈고 1947년부터는 조선미술동맹 위원장으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8월에 북한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조선미술동맹 대표로 비밀리에 참가했다.
9월에 참석한 이 대회에서 그는 북한에 조선인민공화국을 수립케 한 조선최고인민회의의 남한 측 대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평양미술학교 교원진에 영입되었다.
그는 북한에 남았고 그 후의 활동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