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리히터는 말했다
“다다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예술 운동이 아니었다.
이것은 전쟁이 갑자기 여러 국가들로 번진 것처럼 예술계에 몰아친 폭풍우라 할 수 있다.
다다는 구름 낀 하늘에서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으며, 지나간 뒤에는 다다에서 분출된 에너지가 새로운 형태, 새로운 소재, 새로운 사상, 새로운 방향, 새로운 사람들을 낳았다.
다다는 바로 새로운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다다 운동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상적이고 불가사의하며 비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1947년 알프레드 바의 기획으로 뉴욕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환상적 미술, 다다, 초현실주의’전은 다다주의를 ‘환상적 미술’의 역사적 문맥에서 20세기에 일어난 사건으로 다루었다.
1922년경 다다주의가 붕괴되자 초현실주의가 그 뒤를 이었으며 다다주의를 주도한 많은 예술가들이 초현실주의 운동을 이끌어냈다.
대중에게 충격을 주고 도발하는 것을 통해 주목을 끌고자 하는 다다의 바램이 미래주의의 선언문에서 예견되었던 것처럼, 다다 운동 속에 내재한 초현실주의적 속성도 키리코의 환각적인 그림에서 이미 나타났다.
다다가 남긴 또 다른 긍정적인 결과는 반예술 개념이다.
이 개념은 20세기 내내 끊임없이 나타났으며 이러한 생명력이야말로 다다가 단순히 전통적인 예술 개념을 희화, 패러디, 조롱하며 거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통 미술의 전당이었던 화랑, 뮤지엄 등을 대신할 새로운 무엇을 창출하였다는 증거이다.
다다의 이런 면은 미국에서는 주로 마르셀 뒤샹에 의해 예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