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주의Dadaism

다다는 마래주의, 입체주의, 또는 신조형주의처럼 새로운 양식이나 기법이 아니라 트리스탄 차라Tristan Tzara(1896~1963)의 말처럼 새로운 ‘정신의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다의 시작과 끝을 정확하게 지적하기란 어렵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16년 뉴욕과 취리히에서 다다 운동이 구체적으로 처음 나타났다는 것이 미술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다 운동의 성격과 표현 양태는 그것이 발생한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다다는 전쟁의 야만성에 환멸과 혐오감을 느끼고, 전쟁을 가능하게 만든 전통적인 사회 가치에 대해 반기를 들고 일어난 젊은 시인, 작가, 예술가, 음악가들의 운동이었다.
이들은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 우상을 타파하며, 혁명적인 것을 추구했다.
또한 과격하고 도발적인 미래주의 기법을 과장했으며 이를 통해 기존 사회의 기준과 규범을 맹렬히 공격했고, 그들이 보기에 자살 직전에 놓인 문화를 냉소와 풍자로 비웃었다.
다다주의자들은 예술의 전통을 공격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아방가르드 경향까지도 그 대상이 되었으며, 반예술의 풍자적인 테러디를 통해 예술 개념 자체를 타도하려고 했다.
이와 같은 선동적인 소란으로 인해 다다 운동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되었지만 비합리성을 숭배한다는 점은 다다 운동을 다른 사조와 동등한 위치에서 다루는 것을 그만큼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이후 미술사에서 다다의 성격을 규정하는 일은 혼란과 딜렘마에 빠졌다.

다다의 허무주의적인 분규 뒤에 감추어진 긍정적 목적을 명백히 규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다 운동이 한창일 때에는 긍정적인 목적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었지만, 냉정히 돌아볼 때 다다 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의 상당수는 그들의 격렬한 운동에는 부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취리히 다다 그룹의 일원으로 화가이며 영화 제작자 한스 리히터는 1964년 『다다. 예술과 반예술 Dada. Art and Anti-Art』에 적었다.
“다다는 다른 양식들처럼 단일화된 형식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다다는 새로운 예술 윤리를 지녔으며 이것으로부터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새로운 표현 수단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수단은 국가에 따라, 개별 예술가의 기질과 능력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새로운 윤리는 때로는 긍정적인 형태를 때로는 부정적인 형태를 취했으며, 어떤 때는 예술로 어떤 때는 예술을 부정하는 형태로 나타났으며, 때로는 상당히 도덕적인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철저하게 비도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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