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Scepticism는 피르로Pyrrho에 의해서 
 

회의주의Scepticism는 피르로Pyrrho에 의해서 처음으로 철학에 소개되었다.
피르로는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군인으로 인도의 인더스 유역에까지 원정을 간 적이 있었고 그런 경험이 그로 하여금 여행을 즐겨 하게 했다.
그는 여생을 고향 엘리스Elis에서 보내다가 기원전 275년에 타계했다.
그는 과거의 의심들을 집대성했을 뿐 새로운 의심을 보탠 것은 없다.

회의주의자들은 지각의 인식적 가치를 부인하면서 지성적 교리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으며 지식의 오류로부터 피할 수는 있었지만 올바른 지식을 놓치는 손해도 함께 감수해야 했다.
피르로는 현명하게도 책을 쓰디 않았는데 그는 궤변가들sophists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와 조르지아스Gorgias의 감관의 인식이 모호함과 분명한 모순을 야기시킨다는 주장에 도덕적 그리고 논리적 회의주의를 보탰다.
그는 한 행위가 다른 행위보다 선행되어야 할 이성적 뒷받침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우선 순위가 없이 닥치는 대로 행위하는 것을 의미했다.

회의주의는 자연히 철학적 사고가 부족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들은 각 학파의 다양한 주장과 학파들 사이의 논쟁이 격렬함을 보고 그들이 모두 지식을 갖고 있는양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지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회의주의자들은 공부하는 평판 있는 사람들의 지혜로움과 자신들의 무지를 견주면서 게으른 자신들을 자위했다.

그럼 회의주의가 철학이 될 수 있겠느냐고 여러분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답은 그렇다.
철학이다.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나는 이것에 관해 이렇게 생각하고 저것에 관해서는 저렇게 생각하지만 자신은 없다"고 말할 것이며, 지성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은 "나는 그것에 관해 모르는데 알기를 원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회의주의자들은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고 말면 회의주의는 철학이 아니다.
그들은 지식의 불가능을 주장하지는 않으면서 철학자들의 이론에 설득력이 부족함을 증명하려고 했으므로 논리학을 발전시켜 철학에 참여한 것이다.

피르로의 제자 티몬Timon은 회의주의를 좀더 진전시켜 그리스인의 논리를 지성적으로 논쟁하면서 단지 연역법만을 받아들였으며 모든 연역법은 유크리드Euclid가 주장한 대로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일반적인 원리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티몬은 그와 같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모든 논쟁은 무nothing로부터 끊임없이 고리고리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방법으로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 그의 이론을 많은 사람이 받아들였으므로 끝내는 중세에까지 두드러졌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뿌리를 자르고 말았다.
매사 의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티몬을 연구할 일이다.

티몬의 글은 사려져버렸으므로 남아 있는 두 개의 문구는 다음과 같다고 럿셀은 저서 <서양 철학사>에 적고 있다.
"현상phenomenon은 항상 유효하다."
"나는 저 꿀이 달다고 주장하는 것을 거부하고 나는 그것이 단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의심도 이쯤되면 병인데 당시에는 형편없는 논리적 형이상학이 판을 쳤으므로 티몬과 같은 회의주의자가 나타나서 철학적 미신을 청소한 것은 철학사에 소득이었다.
매사에 의심이 많은 주위 사람들 때문에 여러분이 좀더 진실해지려고 노력할 줄 아는데 그렇다면 여러분의 진실이란 회의주의자들의 덕택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회의주의자들은 티몬의 이론에 수정을 가하여 현상은 그저 일어나는 것으로 유효한 것도 유효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꿀이 단 것으로 나타난 것은 높은 확률이기는 하나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안다.
그리고 태양이 어제도 그제도 동쪽에서 떠올랐다고 내일도 태양이 반드시 동쪽에서 떠올라야 하는 법은 없으므로 내일 태양이 떠오를 것인지에 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티몬은 그의 긴 인생 후반을 철학의 수도 아테네에서 보낸 후 기원전 235년에 타계했고 그의 사망과 더불어 피르로 학파는 종식되었지만 그의 이론은 조금 수정이 가해진 후 이상한 일이지만 플라톤이 건립한 대학 아카데미에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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