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회

백만회는 자유미술가협회와 미술문화협회에 비하면 규모가 작았지만 두 단체보다 1년 앞선 1936년에 결성된 동인전이다.
백만회의 주요 멤버는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에 드나들던 연구생들이었다.
아방가르드 양화연구소는 1933년 도고 세이지東鄕靑兒(1897~1978), 아베 곤고阿部金剛(1900~68), 고가 하루에古賀春江(1895~1933), 그리고 프랑스에서 귀국한 후지타 쓰구지(1886~1968) 등이 개설한 곳으로 연구생들 가운데는 김환기와 김병기 그리고 일본 조각의 거장이 된 사이토 요시시게(1904~), 히로하다캔 등 서른 명 가량 있었다.
이 연구소는 잠시 동안 존재했고 이곳 출신 연구생들이 만든 몇몇 그룹 중 하나가 백만회이다.

세이지는 제3회 이과전에 입선한 후 아리시마 이쿠마로부터 수학했으며 1919년에 프랑스로 가서 공부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다다주의의 이론가 시인 트리스탄 차라와 미래주의의 이론가로 미래주의 선언문을 작성한 시인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 등을 통해 두 사조를 알게 되었다.
세이지의 작품은 “10명의 사람 중 9명까지 좋아하게 할 수 있는 예술”을 목표로 하여 로맨틱한 화풍으로 그린 꿈과 같은 여성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훗날 동경 신주쿠에 그를 기리는 도고 세이지 미술관東鄕靑兒美術館이 건립되었다.

백만회는 긴자의 기노구니아 화랑에서 1936년 한 해에만도 수차례에 걸쳐 전람회를 열었으며 여기에 참여한 우리나라 화가들로는 김환기와 길진섭이 있다.
1936년에 열린 제2회와 제3회 전람회에 길진섭이 <두 여인>, <어선>, <형매 兄妹>를 출품했고 김환기는 제3회전에만 <동방 東方>을 출품했다.
1936년 8월호 『아틀리에』에 백만회에 대한 평을 쓴 오가와 다케이는 제2회전에 출품한 김환기의 작품에 대해서는 소질은 있지만 이번 작품은 별로 좋지 않다고 했으며, 오히려 길진섭의 작품이 좋아졌다고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