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처럼 살던 견유학파 
 

세상을 낙천적인 생각으로 대한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한다면 그가 타계한 후 출현한 철학자들은 그와는 반대로 세상을 고난의 장소로 인식하면서 세상으로부터 자신들을 격리시키면서 미덕만을 유일한 가치로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유럽을 휘젓고 다니던 시기에 철학의 도시 아테네에는 네 학파가 존립했다.

1. 디오게네스의 가르침을 받드는 견유학파
2. 회의주의
3. 제노의 가르침을 받드는 스토익학파
4. 에피큐러스를 받드는 에피큐러스학파

먼저 견유학파부터 알아보기로 한다.
견유학파Cynics(cynic은 개같은canine이란 뜻이다)의 창설자는 디오게네스Diogenes로서 그는 한때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으며 플라톤보다 20살이 많은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로부터 수학했다.
소크라테스가 사망하자 아테네는 철학이 파산한 것처럼 일시적 일식현상이 일어났다.
안티스테네스는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떠난 후 허무주의에 빠졌는지 귀족 제자들보다는 노동자들과 어울리기를 즐겨 하면서 그들과 같은 옷을 입었고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장터에 가서 설교하기를 즐겨 했는데 평이한 그의 가르침을 무식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론으로 정련된 철학을 무가치하게 여기면서 그는 철학자들이 알 수 있는 것들이라면 보통사람들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지식의 대중화를 주창했다.

안티스테네스는 사람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랬으며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그는 무정부, 무소유, 독신생활, 무종교를 주장했으므로 그를 따를 수 있었던 사람들은 자연히 노예와 사회적으로 실패하고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이었다.
그는 금욕주의를 추구한 것은 아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을 거부했으며 감관을 위한 인위적인 즐거움을 경멸했는데 이런 점은 소크라테스와 같았다.
그는 "나는 즐겁기보다는 미치기를 원한다"고 했다.

안티스테네스로부터 영향을 받은 디오게네스에 관한 내용이 기록으로 전해온다.
"유시네Euxine의 시노페Sinope로부터 온 젊은이였는데 안티스테네스가 첫눈에 그를 반기지 않았다."

디오게네스는 개같이 살기를 바랬으며 종교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전통, 관습, 옷차림, 집, 음식, 또는 체면을 거부했다.
어떤 학자는 그가 목욕통 속에서 지냈다고 주장하는데 길버트 머래이Gilbert Murray는 저서에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커다란 용기pitcher 속에서 지냈는데 원시인들이 용기를 관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디오게네스는 인도의 고행자처럼 구걸하면 살았고 사람들이 형제처럼 우애가 있기를 바랬는데 그의 형제애에는 인류뿐 아니라 동물도 포함된다.

그에 관해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로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 가 그를 위해 호의를 베풀어줄 것을 제안하자
"그저 나의 빛을 가리지 마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말을 두고 학자들마다 해석이 분분한데 더러는 알렉산더가 빛을 등지고 그를 그늘지게 했으므로 따사로운 빛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다른 학자들은 자신의 영광을 가리지 말라는 은유의 응답이었다고 해석한다.
어떻게 해석하든 그는 알렉산더의 제안을 뿌리쳤다.

그의 가르침은 개같은cynic(개같은이란 뜻이므로) 소리가 아니었고 오히려 미덕을 추구하는 방법론으로 미덕과 도덕적 자유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을 스토익학파 사람들은 수용했지만 그들은 문명의 쾌적함을 배척한 디오게네스를 따르지는 않았으므로 스토익이라는 학파를 따로 결성하게 되었다.

디오게네스는 우리에게 인위적이고 복잡한 생활을 하도록 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의 벌은 옳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자의 후예들과 루소 그리고 톨스토이와 유사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언행에서 그는 그들보다 더욱 일치했다.
그를 따른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으며 그래서 견유학파는 대중적이었다.
기원전 3세기 초 그와 같은 생활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행했는데 마치 그가 거지왕이라도 되는 듯 했다.

디오게네스는 무소유하면 얼마나 행위가 자유스러워지는지에 관해 작은 책자로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간단한 식욕법이 즐거움을 주고 겨울에 비싼 옷을 입지 않아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고 가르쳤는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따뜻한 나라 이집트에서는 겨울을 따뜻하게 지내는 것이 쉬웠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웃기는 일이며 자식이나 친구가 죽었다고 슬퍼하는 것은 여간 웃기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견유학파 사람 텔레스Teles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 적이 있다.
"내 아들이나 아내가 죽었다고 이것이 내가 여전히 살아 있고 소유하기를 금하는 나 자신을 소흘히 해야 할 이유가 되겠느냐?"

그러면서 그는 어느 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내게 자의로 적선하고 나는 용맹스럽게 그것을 받는데 피차가 천하게 구는 것도 아니며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도 아니다."

이는 매우 편리한 말로 거지철학도 이쯤되면 당당하며 존경을 받을 만 하다.
견유학파는 금욕주의를 추구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의 좋은 것들에 무관심했는데 무관심에는 한계가 있었고 무엇을 빌린 후 갚는 데에는 무관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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