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보나르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는 베네치아 화파, 들라크루아, 고갱, 오딜롱 르동Odilon Redon(1840~1916) 등 위대한 색채 화가의 전통을 잇는 당대의 가장 중요한 순수 화가였다.
법학을 공부한 뒤 1888년에 파리 에콜 데 보자르와 아카데미 쥘리앙에서 수학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에두아르 뷔야르Edouard Vuillard(1868~1940)와 모리스 드니와 함께 1890년 화실을 얻어 함께 사용했다.
뷔야르는 고갱과 일본의 채색 판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평면성과 강하게 패턴화된 색면 양식을 발전시켰는데, 이를 장식적인 패널화, 무대장치, 채색 판화에 도입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그는 이미 말기 인상주의 양식으로 실내 정경을 조용하지만 미묘하며 민감하게 그리는 앵티미즘Intimisme의 대가가 되었다.
앵티미즘은 보나르와 뷔야르의 회화적 특징을 일컬은 용어로 1890년대 처음 사용되었는데, 인상주의자들이 풍경화에서 자연 세계의 색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데 반해 두 사람은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종종 색채를 과장하고 왜곡시키면서 흔들림 없이 고요한 가정생활의 따듯함과 편안함을 전달하려고 했다.
뷔야르는 끝까지 본질적이 앵티미즘 양식을 고수했지만, 보나르의 작품에는 종종 앵티미즘이란 용어가 적합하지 않은 웅장함과 풍요로움이 있다.

보나르의 장식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1890~1900년대였고, 이 시기에 그린 그림은 선 위주의 율동감과 장식적 특성이 돋보이는 점에서 아르누보 양식과 유사하다.
또한 그는 일본 목판화를 찬양하여 ‘일본풍 나비’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나비Nabis란 그와 폴 세뤼지에, 모리스 드니, 뷔야르 등이 결성한 그룹으로 1892~99년에 함께 그룹전을 연 단체의 명칭이다.
나비라는 명칭은 예언자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비롯한 것으로 색채 왜곡을 통해 종교적인 깨달음을 표현하려는 화가들의 모임이다.

보나르는 포스터 디자인에 눈을 돌린 최초의 예술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무렵 프랑스 화단에서 보나르의 위치는 확고해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그의 명성은 높아만 갔다.
그는 표현적인 장식적 회화를 그리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그런 재능은 삽화나 무대 배경 및 여타의 장식 작업에서도 드러났다.
1915년경에는 자신의 작품에 불만을 갖고 회화의 형식적인 속성들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보나르는 본래 물감의 감각적 속성에 매혹된 색채 화가였지만 후기 작품에서는 구조적인 힘을 보여주었는데, 이런 측면은 대부분 간과되었다. 비평가 대니스 서턴은 “보나르의 작품은 붓자국과 색채가 아우러져 궁극적으로는 신비스럽게 반짝이는 효과를 내는 하나의 패턴을 창조하고자 한 그의 결심을 반영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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