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노반 문화 
 

에트루리아인은 로마로 이주한 후 원주민들의 문화를 받아들였는데 이런 문화가 볼로냐Bologna에서 발굴되었고 고고학자들은 그들의 문화를 빌라노반Villanovan이라고 부른다.
이트루리아Etruria 근처 엘바Elba에서 발굴된 쇠로 제작된 유물들을 보면 그들에게 대장업이 발달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현존하는 쇠로 제작된 무기들을 미루어 볼 때 그들이 그 지역을 무력으로 통치했을 것으로 쉽게 짐작이 된다.
루브르 뮤지엄에는 가는 유리로 된 상자 안에 쇠로 제작된 창, 칼, 방패, 그리고 팔과 다리를 보호하는 것들이 파손된 채 녹이 슨 모습으로 잔뜩 진열되어 있는데 그것들을 보면 왠 싸움박질을 그렇게도 잦게 했을까 싶다.

에트루리아인은 기원전 6세기에 티베르Tiber 강 남쪽 뚝에 교두보를 세웠는데 이 지역은 로마에 속했으며 로마는 라틴족이 살던 많은 작은 도시들 가운데 하나였다.
라틴족이 로마를 6세기 말까지 통치했는데 왕을 세웠다.
당시 많은 도시국가에서는 왕에 대적하는 햑먕이 분분했으며 그들의 마지막 왕이 기원전 509년에 쫒겨났다고 한다.
그 해가 역사적으로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왕이 서쪽 그리스인과 싸움박질하느라 힘이 빠진 권력누수 현상의 와중에서 혁명군들을 만나 내쫒긴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로마에서 발견된 유적들에는 에트루리아인의 것들이 남아 있음을 본다.
로마는 해상과 육로로 그리스와 교역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그래서 두 문화가 병존하는 제법 진전된 국제 도시로 부상되었는데 종교적 의식과 행정적 요소에는 에트루리아인의 것들이 있었다.
루브르 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제작된 한 쌍의 부부를 보면 남자가 오른손을 여자의 오른쪽 어깨 위에 얹은 모습인데 고대 아이오니아인의 조각을 상기하게 한다.
에트루리아인 부부를 모델로 한 조각에는 <부부의 석판 Sarcophagus of a Married Couple>(높이 1.14m 너비 1.0m)이란 팻말이 붙여져 있으며, 비스듬히 기댄 두 사람의 모습은 보통 향연에 참석한 사람들의 자세이고, 마치 기념촬영에 임한 듯한 모습이다.
두 사람이 상체를 90도로 세운 모습은 조각가가 전혀 사실주의에 입각하지 않았음을 알게 하는데 이런 사실주의에 대한 무관심은 에트루리아인의 일반적 경향이었다.

에트루리아인이 왕을 세워 로마를 100년가량 통치했는데 로마인이 그들의 마지막 왕을 퇴위시키고 기원전 510년에 공화국을 세웠다.
공화국은 450년 동안 지속되었고 정체는 영국의 의회제도와 같았으며 로마 왕국의 위세를 떨칠 군사적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으므로 로마 왕국은 그리스와 더불어서 서양 문명의 주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로마는 일인독재 정치체제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고 로마글자 SPQR은 '로마인의 원로원과 국민'이란 뜻인데 이런 원로원을 둔 의회제도는 헌법처럼 준수되면서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 제법 민주주의 정체가 지속되었다.
로마인 모두 정치에 참여했는데 물론 로마인 모두가 로마 시민은 아니었다.
법은 시민 대의원들에 의해 제정되었고 원로원과 시민 사이에 팽팽한 대립도 있었다.
원로원은 기원전 300년경에 생겼다.

로마인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로마 글자로 돈을 페큐니아Pecunia라고 하는데 그 뜻은 '양떼 혹은 소떼'이며 소의 경우 두 마리에 해당했다.
장례문화의 경우 시신을 화장한 후 뼈를 가루로 만들어 청동으로 된 용기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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